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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숨은 공로자, 각본가 아론 소킨

드라마 <웨스트 윙>의 열혈 시청자였던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좋아하는 TV쇼 목록을 만든 다음 당연하게도 이 드라마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알려지면서 그의 페이스북에서 <웨스트 윙>은 슬며시 사라졌다. <웨스트 윙>의 각본가 아론 소킨이 <소셜 네트워크>의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의 일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의 모습이 긍정적으로만 그려지지는 않은 이 영화를 환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아론 소킨의 반응도 변함없고 분명하다. “마크 저커버그의 이미지를 돕는 게 내 직업은 아니다. 내가 뭐 그가 소유한 신문사의 대표도 아니고 그의 랍비(유대교의 지도자)도 아니니까. 내가 그에게 해를 입히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를 (있는 그대로) 사진 찍는 게 아니라 그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느꼈던 거다.”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감독 이전에 각본가에게서 많은 것이 이미 결정된 영화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나는 영상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가들이 부럽다. 난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는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묘사한다”는 그의 말은 영화를 보고 난 뒤에야 읽은 것이지만, 이 영화의 몇몇 대사는 일침을 가하는 적절한 때와 강도에 있어서 잊기가 힘들다. 하버드에서도 최상위층으로 군림하던 쌍둥이 형제 윙클레보스가 소송을 걸어왔을 때 주인공 마크는 핵심을 짚는다. “걔네는 지적재산권 때문에 날 고소한 게 아니에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 거지요.” 배신을 당한 걸 알고 난 뒤 화가 난 마크의 친구 에두아르도가 그 배신을 주동한 인물인 숀을 향해 주먹을 날릴 것처럼 한 다음 겁먹은 숀을 향해 던지는 대사는 실물의 세계가 페이스북의 세계에 던지는 필사적인 비아냥이자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다. “네가 내 옆에 있을 때가 좋아, 숀. 넌 나를 세게 보이게 해주거든.” 이런 뛰어난 대사들을 마주했을 때 이 영화의 각본가 아론 소킨의 전과 후를 돌아보게 된다.

아론 소킨은 흥미진진한 법정드라마 <어 퓨 굿 맨>(1992)의 각본가로 화려하게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 뒤 <맬리스>(1993), <대통령의 연인>(1995), <찰리 윌슨의 전쟁>(2007)의 각본을 써왔다. 그리고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한 건 200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드라마 <웨스트 윙>이었다. 이 목록만 놓고 보아도 그가 갈등과 반목이 다반사인 정치계 혹은 진실 공방전의 수수께끼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는 아마 이런 아론 소킨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각본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벤 메즈리히의 책 <우연한 억만장자>가 <소셜 네트워크>의 원작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아론 소킨은 책의 완본을 보고 쓴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집필되는 그때에 벤 메즈리히가 제공한 자료를 근거로 동시에 각본을 써나갔다. 마크 저커버그와 면담도 시도했다. 하지만 (아론 소킨의 말을 믿는다면) 마크 저커버그가 영화 내용에 너무 많은 통제권을 요구해 결렬됐다. 이제 차선책은 마크 저커버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이었는데 이때 비로소 엄청난 난관이었던 문제가 기발한 해결책으로 변모하게 된다. “처음에는 방향을 잃고 말았다. 세상에!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난 곧 깨닫게 됐다. 아니 잠깐만, 이거 대단한걸! 세상에!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지 않은가!” 영화 속 주요한 세 부류 인물의 서로 다른 주장을 부딪치게 해 강도 높은 긴장을 끌어낸 영화적 진술 장치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러니 이 영화가 픽션인가 진실인가 하는 질문에 아론 소킨은 아론 소킨식으로 대답한다. “나는 많은 조사를 거쳤다. 진실은 주관적이고 사실은 주관적이지 않다. 우린 한 무더기의 사실을 가져다 진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 가지 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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