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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단원들의 일대 소동극 <더 콘서트>
주성철 2010-11-24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러시아. 볼쇼이 교향악단의 천재 지휘자였던 안드레이 필리포프(알렉세이 구스코프)는 30년 전에 과거 유대인 단원을 숨겨줬단 이유로 쫓겨난 적 있다. 하지만 음악에의 꿈을 접지 않은 그는 극장 총책임자 레오니드의 구박 속에서도 말단 청소부을 하면서 계속 볼쇼이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드레이는 레오니드의 사무실을 청소하다 파리의 명문 샤틀레 극장에서 보낸 볼쇼이 교향악단 초청공문 팩스를 발견한다. 그것을 몰래 가로챈 그는 절친한 첼리스트인 친구 사샤(드미트리 나자로브)에게 샤틀레 극장에서 30년 만의 복귀 무대를 가지자고 제안한다. 2주 안에 80명에 가까운 단원들을 모아 볼쇼이 교향악단으로 위장해 프랑스로 가자는 것. 우여곡절 끝에 스폰서를 구하고 비자까지 마련해 프랑스로 떠나면서 그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에 빠질 수 없는 바이올린 솔리스트로 당대 최고의 안느 마리 자케(멜라니 로랑)를 모시려 한다.

<더 콘서트>는 오합지졸 단원들의 일대 소동극이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1989)를 떠올리며 ‘가짜 볼쇼이 교향악단 파리에 가다’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사람을 모으는 것도 고생이었지만 여행이 시작되고부터 말썽은 계속된다. 대절한 버스가 오지 않아 공항까지 단체로 걸어가고, 돈이 급한 그들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경비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심지어 파리 도착과 동시에 악단 활동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장사와 돈벌이까지 하는 단원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준비는커녕 연습 한번 하기 어려울 정도다. 거기에는 현재 러시아의 모습과 겹쳐지는 유머 코드도 숨어 있다. 스폰서로 나선 석유재벌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는데, ‘파리 생제르망을 사버릴까’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 첼시의 구단주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물론 시끄럽기만 한 단원들은 한동안 호흡을 맞춰보지 못했을 뿐 실력은 최고다. 푼돈을 받으며 지하도에서 공연하는 이들일지라도 연주에 몰두하는 그 순간만큼은 경외심을 자아낸다. 전혀 준비가 안된 모습에 넋이 나간 안느 마리 자케의 호기심을 동하게 한 것도 사샤의 첼로 연주다. 정신없이 왁자지껄한 가운데 역시 음악의 선율이 우아한 평정심을 선사한다. 그 순간만큼은 어떤 걱정과 불안도 싹 사라진다. 음악이 주는 평화란 아마도 그런 것일 거다.

그것은 기어이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으로 옛 명예를 되찾고 싶다는 안드레이의 자존심과도 이어진다. 그것은 개인의 명예이기도 하지만 교향악단 전체의 긍지이기도 하다. 말썽만 피우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제 실력을 되찾고 오묘한 화음을 이뤄가는 것, 그렇게 서로 다른 소리들이 조화를 통해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안드레이가 말하는 ‘진정한 공산주의’다. 또한 거기에는 러시아의 자존심인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애정이 깊게 배어 있다. 그들에게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에서 시대와 이념의 경계를 초월한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편,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솔리스트이자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안느 마리 자케는 공연 자체가 안드레이의 망상으로 이뤄진 무대라고 생각해서 망설이지만, 공연을 통해 친부모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될 거란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낸다. 그렇게 브레즈네프에 반대해 쫓겨났다 명예를 되찾으려는 지휘자,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통해 친부모의 진실과 만나려고 하는 천재 바이올린 솔리스트, 그리고 저마다 옛 기억을 잊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악기마저 다 팔아먹은 채 생업에 종사하다 30여년 만에 ‘음감’에 도취된 교향악단, 그렇게 <더 콘서트>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통해 저마다의 자아를 찾아가는 영화다. 익숙한 소동극이지만 라스트 10여분의 콘서트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불협화음으로 시작했다 안느 마리 자케의 매끄러운 선율에 이내 감각을 되찾아 멋진 화음을 이루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다. <더 콘서트>는 음악을 매개로 누군가는 트라우마를 씻고, 누군가는 생에 대한 감각을 되찾으며, 그리하여 어긋났던 그 모든 것들이 기적처럼 꿰맞춰지는,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제목만큼이나 간결하고 명쾌한 음악영화의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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