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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영광을 포기하지 말라
사진 백종헌 2010-12-02

2011년 영진위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제작지원금 전액 삭감에 반대한다

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제작지원금이 전액 삭감된다고 한다. 1998년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13년 만이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은 김대중 정부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의 영화진흥공사 시절 처음 생겼다. 좌파들이 좌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란 말이다. 처음 300만원씩 20편의 필름 단편영화에 균등 지원하던 방식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디지털영화와 장편영화, 다큐멘터리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왔고, 매년 40여편의 작품들이 작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 지원받았다. 한국영화로는 처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수상한 송일곤 감독의 <소풍>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독립영화 제작지원의 수혜를 받았다. 어린 시절 단편영화를 만들던 영화인들은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역시 영진위의 독립영화 제작지원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더 늦게 나왔을 것이다. 직접지원이 문제라고? 이 제도는 영화를 만든 감독들에게 떡고물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화가 제작되어 세계의 관객과 함께 즐기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독립영화인들이 지원금이 없다고 영화를 못 만들진 않는다. 다만 좀더 여유있는 제작환경을 조성하고, 없는 살림에 조명이라도 하나 더 칠 수 있다. 그래서 좀더 퀄리티 높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원제도의 효과는 지원을 받는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이 영진위 지원을 목표로 열심히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제작 계획서와 예산안을 다듬는 훈련을 쌓는다.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영화인에게, 누군가 자신의 시나리오를 읽고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다는 사실은 영화인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첫 번째 계기다. 영화 인생의 첫 출발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와 자부심에 관한 문제다. 정부가 영화인들의 자부심을 키워준 적이 있는가? 이 작은 제도에서 영화인들은 최초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좌절도 있지만,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선회하는 경우도 있다. 영진위 지원에서 낙방한 노영석 감독은 절치부심하며 냉면 육수를 만들어 번 돈으로 <낮술>을 만들었다. 제작지원의 효과는 감독에게 돈 몇푼 던져주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인생의 작은 부분을 설계하고, 그것을 목표로 꿈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일말의 꿈과 자부심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것인가?

쥐꼬리 지원금에 대문짝만한 영진위 로고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없애고, 고가의 장비를 빌려준단다. 어떻게? 선착순으로.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 영화 만들 사람들에게 장비를 무상으로 심사도 없이 배급해준단다.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심사 때마다 불공정 논란이 생기는 잡음을 없애겠다고? 위원장이 전화해서 특정 작품을 거론하지 않으면 그렇게 큰 잡음은 안 생긴다. 심사위원들이 욕 좀 먹을 뿐이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독립영화 제작지원으로 사용한 예산은 37억8천만원이다. 완성된 작품은 476편이다. 12년 동안 상업영화 한편도 안되는 예산으로 이렇게 생색나는 사업 효과를 본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적이고 효과 만점의 제도가 어디 있는지 찾아서 제시해주기 바란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받은 감독들을 열거해볼까? 아는 이름 있나 찾아보시길. 정윤철, 김한민, 송일곤, 임필성, 이송희일, 조범구, 권종관, 김종관, 김경형, 임창재, 노동석, 이하, 양익준, 이모개, 민동현, 원신연, 최진성, 송혜진, 오점균, 태준식, 신수원, 김곡, 김선, 이난, 홍형숙, 이진우, 이경미, 윤종빈, 양해훈, 윤성호, 손영성, 민용근, 김태일… 헉헉.(빠진 사람 죄송!) 이들은 지금도 영화를 만들고 있다. 정부는 이들이 쥐꼬리만 한 제작지원금을 받고도,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영화에 대문짝만 하게 영진위 로고를 새겨넣어 국격을 높인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래의 영광을 포기하는 짓은 제발 멈추어야 한다.

글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