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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이런 캐릭터라면 죽어도 좋아

면가 역의 김윤석

“1년 가까이 고생해서 그런지 발이 쉽게 안 떨어졌다. 마음 상태가….” 자신이 연기한 ‘면가’의 분량을 다 찍자마자 김윤석은 스탭들의 축하 인사를 뒤로하고 <황해> 현장을 떠났다. 시간이 잠깐 지났을까, 그는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맥주 5캔을 담은 비닐봉지를 한손에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아 상대 배우인 하정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김윤석은 맥주 3캔을 연거푸 마신 뒤에야 현장을 떠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김윤석의 마음은 “허무했다”고. 어쩌면 김윤석에게 ‘면가’는 쉽게 떨쳐낼 수 없을 정도로 징글징글한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주에서 개타고 말장사하는 시절’만큼 면가에게 어울리는 말도 없다. 면가의 주 무대는 중국 옌볜. 아래로는 북한 압록강, 오른쪽으로는 러시아의 하얼빈 등, 두 국가의 경계 지역인 이곳은 “술집에서 눈만 잘못 마주쳐도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드는, 그야말로 전시 상황, 무질서의 공간”이다. 공존보다는 생존이 우선시되고, 어떤 일이든지 항상 성패가 갈리는 이곳에서 면가가 조직을 꾸리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무조건 살아남는 것! 빚더미에 나앉은 구남(하정우)에게 한국에 가서 ‘어떤 사람을 죽이라’고 제안하는 것도, 구남의 임무가 실패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직접 한국으로 가는 것도, 전부 생존을 위한 면가의 몸부림이다. 온갖 무리로 뒤엉킨 공간과 “가리봉동과 안산 공단에서 실제로 벌어질 법한”이야기, 그리고 ‘면가’라는 캐릭터는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는 게 배우의 행복”이라는 김윤석을 움직였다.

야생에 가까운 지독함만 보면 면가는 사람보다 짐승에 더 가깝다. 그러나 김윤석은 면가가 “본능보다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라고 한다. “면가는 단순하다. 그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취한다’는 논리에 따른다. 면가가 본능적으로 보이는 것은 차갑고 단순해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전혀 없고. 연민 따위 가져봐야….” 촬영 초반, 김윤석이 “면가가 굳이 무서운 척을 하지 않아도 그의 무시무시함이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는 확신 어린 말을 나홍진 감독에게 건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외양을 보면 면가의 성격은 더욱 분명해진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중국 장교들이 주로 입는 야상을 걸치고, “황사와 차가운 바람에 눈과 입을 보호하기 위해 라이방을 쓰고 수염을 기른” 겉모습은 실제 옌볜 사람과 다름없었다. 이는 전작인 <거북이 달린다>의 시골 형사 조필성은 말할 것도 없고, 짧은 순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타짜>의 아귀보다 훨씬 거친 느낌이다.

완벽을 기하려는 배우 김윤석의 노력은 나홍진 감독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거의 모든 장면을 ‘마스터숏-미들숏-클로즈업’ 식으로 잘게 나눠 찍는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이 매번 ‘장면 연결’(continuity)에 신경써야 하는 어떤 배우들에게는 피곤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윤석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직업이니 할 수 없다. 어떻게 할 거야? 그게 감독의 방식이라면 당연히 맞춰야지.” 그는 “꼼꼼해서 손해볼 건 하나도 없다. 꼼꼼함은 집중력을 높이고, 놓치고 가는 것을 한번 더 챙길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건 인생의 황금기를 바치는 건데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완벽하게 찍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짧은 시간 동안 지금처럼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집요할 정도로 세심한 김윤석 특유의 작업 방식 때문이리라. 그런 그의 다음 선택은 <연애소설> <청춘만화> 등을 연출한 이한 감독의 <완득이>다. “2007년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동명 소설이 원작인 작품으로, 극중에서 완득이의 담임 동주(똥주) 선생을 연기한다.” 완득이를 괴롭히면서도, 잘 챙겨주는 ‘김윤석표’ 똥주 선생을 상상해보니 벌써부터 얄미울 것 같다.

위화의 소설에서 한 수

면가의 주 무대인 옌볜은 혼란의 한복판이다. 중국이 급격하게 자본주의 사회로 변하면서 옌볜 사람들의 삶 역시 극단적으로 바뀌고 있다. 빈부격차가 갑자기 커지다보니 “사람들끼리 서로 다투고, 범죄를 일으키는 풍경은 옌볜의 한 단면”이 됐다. 이런 모습,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들에서 묘사하는 현대 중국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허삼관 매혈기>를 비롯해 <형제>(왼쪽), <무더운 여름>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위화는 변하는 중국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그려왔다. 위화가 쓴 작품들에서 <황해>의 인물과 공간,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목격한 것이 어쩌면 배우 김윤석이 “위화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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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안현록·헤어 태후·메이크업 허선희·의상협찬 헤지스, 모아이, 빈폴, 소다옴므, 미소페옴므, 제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