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포커스] 영화계를 뒤흔드는 빅브러더
강병진 2011-01-10

종편채널이 영화시장에 끼칠 득과 실을 따져본다

2010년 12월31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종편·보도채널 설정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0년 12월31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 4개 신문사를 종편(종합편성 방송채널) 사업자로 발표했다. 발표 전부터 종편은 이미 미디어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지상파 3사에 더해 4개의 종편채널이 벌일 경쟁구도를 레드 오션이 아닌 블러드 오션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채널간의 콘텐츠 경쟁이 가열될 조짐인 만큼, 영화계 또한 종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 보인다. 과연 종편은 영화계의 블루 오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영화계를 위기로 밀어넣을까.

한해 약 40편 드라마 제작 예상

종편의 출현이 가시화되면서 일찍이 예상된 건 드라마·예능 제작업계의 활성화와 스타들의 개런티 상승이었다. 지상파 채널과 시청률 경쟁을 해야 하는 만큼, 이미 지상파에서 자리를 잡은 유능한 연출자와 제작자, 연기자들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이 과열될 것이란 전망이다. 드라마 제작사인 초록뱀미디어의 길경진 대표는 “종편 사업자들은 작품에 대한 권리에 있어서 기존의 지상파보다 더 많이 공유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제작사 입장에서는 기존의 시장보다 유리한 게 사실이다. 판권의 지분이 높아지고, 작품을 노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만큼 수익성 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종편을 영화계의 블루 오션으로 기대하는 쪽 또한 드라마 제작의 활성화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식객>과 <미인도> 등을 제작한 이성훈 프로듀서는 “종편채널로서는 기존의 방송사와는 차별화되는 콘텐츠를 원할 것”이라며 “그 때문에 생방송처럼 제작해온 기존의 드라마 제작사와 달리 아이템과 완성도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영화제작사에도 기회가 열려 있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종편이 생겨날 경우, 한해에만 약 40편의 드라마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의 수요가 기존의 드라마 제작사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게다가 <연애시대>나 <달콤한 나의 도시>등 영화감독과 시나리오작가, 스탭들의 방송 진출이 성과를 보인 사례도 있다.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영화계가 종편의 시대를 기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판권 가격의 상승이다. 지상파 시장이 영화의 부가판권 시장으로서 매력을 잃은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종편의 경우, 24시간 방송이 허용된 터라 자체제작 콘텐츠 외에 영화 방영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기업 영화 배급사들은 이미 종편 사업자와 콘텐츠 공급 및 공동기획 제작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쇼박스의 김택균 홍보부장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효과가 빨리 올지는 모르지만, 투자배급사 입장에서는 부가판권 시장의 확장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업계에서는 4개 채널이 너무 많다고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4개가 다 있거나 그중 2개만 남아도 새로운 시장인 셈이다.”

종편채널의 판권수급 경쟁은 단순한 콘텐츠 공급뿐만 아니라 종편채널 사업자의 직접적인 영화투자까지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흥행성이 높은 영화의 경우, 판권 구입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투자를 통해 판권을 구입하려는 움직임도 늘 것이란 예상이다. 종편 사업자들과 콘텐츠펀드 운영을 논의 중인 보스톤창업투자의 문수봉 부장은 “펀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당연히 드라마지만, 그중의 일부는 영화와 게임 등에 투자를 고려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작비 상승 거품과 캐스팅 난항 전망

종편의 출현이 드라마 제작의 활성화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영화계 인력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한편, 새로운 자금줄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동시에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무엇보다 종편의 등장이 영화계에 가져올 가장 큰 위기는 ‘거품’이다. 콘텐츠 제작경쟁이 가져올 개런티 상승은 곧 제작비 상승으로 직결된다. 드라마와 인력을 교류해할 수밖에 없는 영화계 또한 제작비 상승을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CJ창업투자의 유동기 이사는 “그에 따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거품의 부작용이 재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널이 단계적으로 늘어나면 모르겠지만, 한번에 4개가 생겨났다. 그들 가운데 결국은 무너지는 업체가 생길 것이다. 거품을 일으켜놓고 그들 중 상당수가 사라지면 영화계로서는 다시 후유증을 겪어야 할 것이다.”

종편이 영화계로 들여올 거품이 다소 먼 미래의 이야기일지라도 당장 걱정되는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계의 작가, 스탭들의 급격한 유출, 종편의 배우 모시기 경쟁이 가져올 캐스팅 난항이 첫 번째로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40억, 50억원의 메이저급 영화가 줄고 있는 시점에서 향후 2, 3년 내에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종편은 검증된 작가들에게 거액의 몸값, 혹은 영화보다는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영화계는 아예 신인작가나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들과의 작업만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향후 3, 4년간은 작가기근현상에 시달릴 것 같다. 한편 이상의 작품을 했던 작가들을 지금의 조건으로 영화계에 잡아두는 건 어려울 거다. 또한 지금도 드라마와 영화가 캐스팅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인데, 종편 시대에는 캐스팅 경쟁이 사상 초유의 사태을 야기할 수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놓인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도 수익을 위해서는 영화보다 더 좋은 조건을 내미는 종편채널의 드라마를 선택하지 않겠나.” 위드어스필름의 최재원 대표는 “배우들의 개런티가 지금보다 배로 뛰지는 않겠지만, 다만 심정적인 마지노선은 깨지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이때 우려가 되는 건 영화의 퀄리티다. 배우들의 몸값이 오르고 제작비가 상승되면 그만큼 어딘가는 감소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테니 말이다.” 결국 종편에 대한 누군가의 기대는, 곧 누군가의 우려로 직결될 듯한 양상이다.

종편은 영화의 새로운 경쟁자

물론 종편에 대한 기대나 우려가 섣부른 것일지도 모른다. 종편채널 사업자들에 영화가 그만큼의 의미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몇몇 영화 관계자들은 종편이 판권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란 예상 또한 착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역시 더욱 가혹해질 시청률 경쟁 때문이다. 종편채널이나 지상파나 시청률 전쟁을 위해서는 흥행영화를 잡으려 할 뿐이지, 그외 다양한 영화들의 판권을 사들일지는 의문이라는 얘기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이준동 부회장은 또한 “종편 경쟁의 양상은 드라마와 예능에 치중할 것이며 영화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화계에도 기회가 열린다는 예상은 어디까지나 기대일 뿐이다. 드라마와 예능이 있는데, 영화판권에 힘을 써서 채널경쟁력을 높이려고 할까?” 현 상황에서는 종편을 영화의 새로운 경쟁자로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우려인 듯 보인다. 영화 <7급 공무원>과 드라마 <추노>의 천성일 작가는 “이제 영화의 경쟁자는 다른 영화가 아니라 게임과 TV, 심지어 노래방까지도 경쟁자다”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진행속도가 빠르다. 지난해에만 드라마와 겹쳐서 포기했던 영화 아이템이 두건 정도 있었다. 종편의 등장은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엔테테인먼트가 그만큼 늘어난 상황으로 봐야 한다. 이제 영화는 더욱 영화답지 않으면 경쟁이 힘들어질 것이다.”블루 오션이 되든 블러드 오션이 되든 영화계는 종편의 영향을 받게 될 듯 보인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