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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르는 고양이

변승욱 감독의 <고양이>

한겨울. 눈 쌓인 인천시 계양구 다남동 인천수의사협회 유기동물보호소 앞. 유기동물보호소에 실험용 고양이를 사러온 보희, 그리고 그녀와 함께 온 주인공 소연. 아직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서서히 공포의 실체가 드러난다. 여배우 박민영은 이제 더이상 <성균관 스캔들>의 남장여자 유생 김윤희가 아니다. <고양이>의 소연이다(왼쪽).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하얀 설경 위에 두명의 젊은 여인이 서 있다. 어떤 멜로드라마 혹은 청춘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것인가. 이 아름다운 눈밭 위의 풍경, 이라고 감탄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보자. 때론 가장 아름다운 장면에 가장 공포스러운 면모가 도사리고 있다. 이곳이 아름답기보다 으스스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렇게 덧붙여보자. 아무도 없는 곳, 눈밭에 버려진 듯 덩그러니 서 있는 두 사람. 촬영지에 인접한 어느 무속인의 터에서는 영화의 촬영과 무관하게 하루 종일 징과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혹은 이런 말을 경청하면서 이 영화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고양이가 나오는 공포영화라는 점에서 심플하게 <고양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고양이가 갖고 있는 이중적 느낌이 있지 않은가. 사랑스러운 애완동물, 하지만 때론 섬뜩하고 무서울 수 있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변승욱 감독) 지난 12월28일 촬영장면은 마치 이 영화의 지향점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 같다. 공포영화 <고양이>의 촬영장이다.

2006년 동부이촌동 아파트 사건이 소재

내리긴 내렸는데, 어디 보자, 여기쯤인가?

주인들이 애완동물을 찾기 위해 잔뜩 붙여놓은 전단지. 하지만 원래 붙어 있던 게 아니다. 제작진이 유기동물보호소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만들었다.

<고양이>는 원래 장윤미 작가의 영상원 졸업작품으로 제출된 시나리오였는데 영상원 교수로 재직하는 이창동 감독의 눈에 띄었고 변승욱 감독이 연출자로 참여하면서 새롭게 각본 과정을 거쳐 1년 반 정도를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2006년 동부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이 이 영화의 중심적인 소재가 됐고 영화 속 결론부와 직결되어 있다. 초고 시나리오에서 동선이나 개연성 등은 다듬어졌지만 실제 사건이 지니고 있는 어떤 흉측함의 느낌은 고스란히 살린다는 계획이다. 다만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미스터리, 추적극의 형식을 띠면서 영화적인 수수께끼들이 입체적으로 더해질 계획이다. “일반적인 공포영화가 무서움, 비명 일변도라면 이 영화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연민의 대상, 그런 두 가지 점이 영화에서 같이 보여질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포도 있지만 종반에는 정서적인 울림이 어우러지면서 그런 양면이 다 같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그게 이 영화의 중요한 컨셉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이 생기자 주인공들이 사건을 추적하는 것이다.”(변승욱 감독) 주인공 소연 역으로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이후 인기가 치솟은 박민영이 맡았고, 그녀를 도와 사건을 해결할 남자배우로는 <국가대표>의 김동욱이 맡았다.

소연은 애완동물 미용사다. 그녀는 평소 폐소공포증을 앓고 있다. 꾸준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요즘은 이상한 환영까지 보인다. 단발머리의 어린 소녀가 그녀 곁을 돌아다닌다. 이즈음부터 소연의 주변에서는 고양이와 얽힌 이상한 일들이 하나둘 벌어지기 시작한다. 소연은 비단이라는 이름의 터키시 앙고라 고양이 한 마리를 맡아서 미용하게 되는데 어느 날 비단이의 주인이 엘리베이터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곳에는 비단이가 남겨져 있다. 소연은 경찰 준석(김동욱)의 부탁으로 비단이를 데려가 보호하게 된다. 고양이에 얽힌 사건은 더 일어난다. 친한 친구 보희(신다은)가 유기동물보호소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오는데 그녀마저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렇게 고양이와 관계된 사람들이 하나둘 죽게 되자 소연은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다. 사건이 여기에 이르자 소연은 비로소 준석과 함께 미스터리를 파헤쳐나간다. 거기에는 고양이들과 관련된 사연이 숨어 있다.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연민의 대상

버스 안에서 소연과 보희(신다은)는 죽은 러브 캣 카페의 주인에 관해 대화하면서 잠시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날의 촬영장면은 소연의 친구 보희가 유기동물보호소로 실험용 고양이를 데리러 가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사건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공포의 실체가 고개를 들기 바로 직전이다. 대략 전체 42회차 예정 중 9회차 분량이다. 567번 버스가 그들을 내려놓고 떠나간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외진 길이다. 인천시 계양구 다남동에 위치한 인천수의사협회 유기동물보호소 앞. 제작진은 보호소 옆 비닐하우스에 촬영 공간을 따로 만들어 이날의 촬영장면에 이어질, 그러니까 버스에서 내려 보호소 안으로 들어가는 소연과 보희의 촬영장면을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다. 이날의 실제 촬영분은 버스를 타고 오며 나누는 대화 그리고 두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는 데까지 촬영됐다. 변승욱 감독은 두 인물이 나누는 버스 안의 대화에서, 다른 점보다 “‘고양이?’ 하고 말할 때의 그 느낌을 강조해달라”고 배우들에게 주문했다. 버스 안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다 사망한 카페 주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두 사람은 주인을 잃고 안락사당한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그때 그들을 태운 버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무엇보다 제작과 연출의 주안점이 궁금하다. 말하자면 고양이를 매개로 공포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어떤 점들이 연출과 제작상의 주안점이 되는가. 먼저 연출. “단순하게 일방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을 추구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동시에 불쌍함과 연민의 감정을 갖추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끝에는 어린 소녀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그 아이에 대한 연민이나 정서, 그런 것들이 같이 묶여서 표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의 묘사는 어떨까? 가령 또 다른 주연에 해당하는 고양이들은 영화에서 어떻게 묘사될 것인가. “사실 고양이가 나오는 영화이다 보니 가장 큰 건 조련의 문제다. 개는 조련이 가능하지만 고양이는 조련이 안된다. 국내에 조련사들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동물 위주다. 고양이 전문 조련사는 별로 없는 상황이라 그것이 어렵다. 고양이 습성을 이용하여 먹이로 유인하는 등 동선을 만들기는 하는데 쉽지 않다. 실제로 연기를 시키는 건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어 실사를 찍을 수 있는 부분은 찍고 난이도가 있는 부분은 CG를 동원할 계획이다. 가령 고양이가 위협을 가할 때의 표정이나 액팅은 실사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변승욱 감독)

변승욱 감독. <고양이>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이후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당신이 지금 품에 안고 쓰다듬고 있는 고양이가 주변의 원인 모를 사망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 기분은 어떨 것인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귀엽고 친근한 애완동물이 공포의 근원이라는 생각은 어딘가 멀리서 찾아온 공포의 정체보다 더 섬뜩하지 않은가. 잘 만든 공포영화는 언제나 익숙한 것을 무섭게 만든다. 영화 <고양이>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 점일 것이다. 영화는 2월 말까지 촬영을 마친 다음 올해 6, 7월경 개봉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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