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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지 않는 사랑을 위하여!

정호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쿠바의 연인>의 리얼 연애담

‘쿠바에 미친 여자.’ 춤과 음악, 그리고 혁명의 열정만 맛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정호현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쿠바의 연인>이 아니라 <쿠바에 미친 여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쿠바는 정호현 감독에게 뜻밖의 연인 오리엘비스(오로는 그의 애칭)을 안겼다. 낙천과 긍정의 나라 쿠바에서 오로를 만나면서 정호현 감독의 카메라는 이국적인 풍광만을 담을 순 없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담는 건 현지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월13일 개봉하는 <쿠바의 연인>은 독특한 다큐멘터리다. 국적도, 피부색도, 나이도 다른 두 남녀가 벌이는 애정행각은 국경을 넘어선 뜨거운 사랑이 존재함을 증명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차별받지 않고 대우받을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지구상에 존재하는지를 따져 묻는다. 한국과 쿠바를 오가며 벌이는 두 남녀의 도발적인 사랑은 그러니까 일종의 시위인 셈이다. 자신들의 사랑을 내걸고 체제도, 국가도, 종교도, 가족도 모두 시험대에 올린 위험한 연인들의 사연이 궁금하지 않은가.

한국 여자 vs 쿠바 남자

오리엘비스(이하 오로)는 요즘 들어 신경질이 부쩍 잦아졌다. 한국에 정착한 지 1년 반, 그동안 쿠바를 한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너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고 했던 오로의 변심을 정호현 감독이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2004년 겨울, 정호현 감독 또한 지금의 오로와 같았다.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지 3년이 되자, ‘나이스한’ 토론토가 지긋지긋하게 싫어졌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고 맨 먼저 떠올린 곳이 쿠바였다. ‘달콤한 휴식’이 필요했던 정호현 감독은 낭만의 도피처로 주저없이 아바나를 선택했다. 말레콘 해변에서 정호현 감독이 마주한 건 눈부신 포말만이 아니었다.

정호현 오로가 점점 ‘까칠남’이 되어가요. 이렇게 까칠한 줄 전에 알았으면 같이 안 사는 건데. (웃음) 오로 감각을 잃어가고 있어요. 점점 ‘쓴맛’ 나는 남자가 되고 있죠. 정호현 쿠바에 가면 원기를 회복할 텐데. <쿠바의 연인> 개봉이 걸려 있으니 일러야 3월쯤? 오로 하롤드라고 가족 같은 친구가 있는데, 전화하면 만날 그래요. ‘거기서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정호현 토론토는 아파트 복도에도 카펫을 깔아요. 밤 9시 넘으면 쓰레기도 못 버려요. 옆집에 소음으로 피해준다고. 지하철에서도 다 나이스해요. 그런데 살짝 스쳐도 ‘소리’라고 해야 하죠. 나이스한데, 그 이상은 뭐가 없어요. 토론토로 돌아갔는데 쿠바가 계속 그리웠어요. 쿠바는 지나가는 기차도 세워달라고 하면 세워주거든요.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가. 쿠바는 토론토에 비하면 엉망진창 시골인데 섹시한 데가 있어요. 사람들의 강렬한 눈빛은 잊지 못하죠. 걸어가면 100m 전부터 쳐다봐요. 첫 번째 여행에서 평생 받을 시선을 한꺼번에 다 받았죠. 토론토에선 사람을 그렇게 봤다간 경찰서에 끌려가는데. 오로 한국에 처음 올 때 프랑스를 거쳐 왔어요. 뭔가 잘못돼서 1등석에 앉게 됐는데, 거기 앉은 사람들은 말도 안 하고 신문만 보니까 재미도 없고. 정호현 그래도 음식은 맛있잖아. 오로 맛있기는. 조금밖에 안 주고. 그 이상한 음식 먹고 파란 똥을 계속 쌌다니까요. 쿠바에선 잘사는 사람들이 낙천적이고 더 잘 놀아요.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그런데 1등석에 탄 딴 나라 사람들은 전부 다 ‘절대 건드리지 말라’, 그런 표정이었어요. 정호현 쿠바 여행 1위 국가가 캐나다인 게 다 이유가 있다니까. 오로 한국에 처음 와서 대전의 아파트에 갔을 때도 너무 조용해서 섬뜩했어요. 죽음의 침묵이었지. 쿠바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시끌벅적하거든요. 근데 요즘은 저도 조용한 게 좋아요. 한국에 오염된 거죠. (웃음)

‘다르다’라는 암초를 넘어

<쿠바의 연인>에 등장하는 루드밀라는 정호현 감독에게 언젠가 편지를 썼다. “이 아름답고도 부조리한 나라의 복잡함이 너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이 글로벌 커플의 사랑을 그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을 뒤로하고 정호현 감독이 열살 어린 ‘숯댕이 총각’ 오로를 무작정 따라나선 건 낭만에 취해서, 첫눈에 반해서라고 넘겨짚어선 안된다. ‘비바 쿠바!’라는 외침만 있었다면, 쿠바의 연인들은 ‘혁명적인 연애’를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먼저 ‘달러’라는 암초부터 넘어야 했다.

정호현 쿠바 남자들은 눈이 정말 반짝여요. 오로 눈도 전엔 그랬는데. (웃음) 특히 해변가에 있는 마린보이들은 완전 멋있죠. 구릿빛 근육하며. 처음 갔을 땐 윈드서핑하는 젊은이가 쓱 와서 물속에서 키스를 퍼붓고 가기도 했죠. 오로 히네테로. 정호현 쿠바에 가면 남자는 히네테로, 여자는 히네테라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어요. 외국인이면 무조건 사귀고 보는. 오로 난 걔들이 너무 싫어. 정호현 쿠바의 치부니까. 4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갔을 때도 히네테로를 소개받은 적이 있어요. 세상에 그렇게 깨는 남자는 처음이었지. 첫인사가 냄새를 좀 맡아도 되냐는 거였으니까. 외국인한테는 좋은 향수 냄새가 난다나. 쿠바에는 페소 빵집과 달러 빵집이 있는데, 그 친구는 달러 빵집에서 외국인과 데이트를 하는 게 꿈이었어요. 이후로 쿠바 남자들은 다 히네테로라고 생각했죠. 오로 훌리아(정호현 감독의 애칭)와 데이트를 할 때도 옛 아바나 시내에는 가기 싫었어요. 관광객 등쳐먹는 히네테로처럼 보일까봐. 정호현 심지어 택시 타는 것도 싫어했어요. 돈 없으니 걸어가자고 하고. 들러붙는 남자가 아니라는 건 좋았는데 융통성이 너무 없는 편이죠. 오로 관계라는 게 서로의 조건들을 인정하고 받아줘야 유지가 되잖아요. 훌리아에게 기대는 건 쉽지만 훌리아도 나한테 맞춰야 하는 것이고. 훌리아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냥 외국인이었어요. 쿠바에서 아시아 여자는 중국 여자를 뜻하는 치니타라고 부르는데, 찢어진 눈이 정말 매력이죠. 매직! 뭐 그런데 전 외모를 중요하게 보는 편은 아니라서. 한때 저를 따라다니던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 예뻤어요. 금발에, 엉덩이도 크고. (웃음) 우리 할머니가 ‘이 말라깽이 녀석아! 너 무슨 생각하고 있냐. 쟤가 엉덩이가 얼마나 예쁜데’라고 만날 타박을 했죠. 그런데 그 친구랑은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거예요.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제 친구들이 다 그랬어요. “저 치니타가 니 삶을 망쳐놓을 거다.” 사실 그때 제가 좀 잘나갈 때였거든요. 3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쿠바청년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고 인터뷰를 하러 다니고, 졸업할 때는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정호현 그때 넌 일만 알던 촌닭이었지. 사귀기 시작한 날에 대한 기억은 서로 달라요. 오로가 전화를 해서 놀러가고 싶은데 혼자 갈까, 친구들이랑 갈까 그래서 용기내서 혼자 오라고 했던 날이 저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오로 이 여자랑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었는데, 같이 이야기하는 게 좋았어요. 크리틱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 사랑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러다 한번은 미술관에 갔는데 제 엉덩이를 꼬집었어요. 그날은 좀 이상했죠. 낚시질은 저쪽에서 했고, 나는 그냥 파도를 타고 둥둥 밀려갔고. 정호현 한창 연애할 때 헷갈린 적이 있어요. 외국인들에게 살사 가르쳐주면 1시간에 5달러 정도 벌어요. 5달러면 레스토랑에서 한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죠. 한번은 오로가 거대한 독일 여자에게 살사를 가르쳐주고 번 10달러로 레스토랑에 가자는 거예요. 얌전하게 따라가서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예의인지, 아니면 다른 데 쓰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 이런 경우를 본 적도 있어요. 아이는 포장이 예쁜 달러 사탕을 집으려 하고, 엄마는 말도 못하는 아이에게 달러 사탕이 페소 사탕보다 24배나 더 비싸다는 걸 설명해야 하고. 오로 훌리아를 만나기 전까지 딜레마는 없었어요. 쿠바에서 저, 잘나가는 청년이었다니까요. 디자이너로 생활하면 1년에 잘 벌면 200만원 정도 벌어요. 생활하기엔 나쁘지 않죠. 고향의 부모님도 중산층 정도는 되고. 남부럽지 않은 집이었는데, 훌리아가 나타나면서 우리집이 폭삭 주저앉은 거죠. 한국에선 월세 내면서 살아야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맘껏 못 먹고. 히어로 투 제로! 쿠바에서 한국 오면서 그렇게 됐어요.

한국은 참 별난 세상

오로가 쿠바디자인대학교 재학 시에 만든 단편애니메이션의 제목은 <To Be>다. 주인공이 ‘소유’라는 단어를 멋모르고 집어먹은 뒤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돈 없으면 죽는’ 한국에서 살기로 맘먹은 오로. 따지고 보면 자신이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운명을 스스로 짊어진 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 “더 가지려 하기보다 갖고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겼던” 오로의 한국 생활은 점점 불만으로 차오르고, 결국 결혼식 전날 ‘파혼 선고’를 내뱉기에 이른다. 쿠바의 가족들에게 환대를 받았던 자신과 달리 한국에서 ‘사탄’이라고까지 놀림받는 오로를 보면서 정호현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호현 여자친구 자격으로 연말에 포도주를 사들고 오로네 집에 갔어요. 가는 내내 10살 차이를 몇살 차이로 줄일까 그 생각뿐이었죠. 아시아 여자를 현지 사람들이 좀 젊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3살 차이로 하자, 뭐 그러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나이를 안 물어봐요. 가자마자 춤추고 노래 부르고. 오로 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갔으니까 뭘 겁내야 하는지도 몰랐죠. 훌리아의 큰오빠는 확실히 편했어요. 부드러운 성격이고. 반면 작은오빠는 ‘이거 싫어, 저거 싫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네거티브 캐릭터예요. 이런 말 하면 작은오빠가 나를 죽이려고 할 텐데. 그래도 가장 어려웠던 건 훌리아의 엄마였죠. 정호현 큰오빠는 좀 피터팬 기질이 있어요. 오로가 온다고 하니까 <혼자 하는 스페인어> 같은 책도 사보고. 구글 통역기로 오로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반면 작은오빠는 얼마 전 방송 카메라 보고도 “꼭 이런 거 해야 합니까?”라고 역정을 냈죠. 작은오빠랑 엄마랑 좀 성격이 비슷해요. 사실 엄마가 맹신도라는 사실이 트라우마였어요. 방송사 PD 앞에서도 성경책 펴고 두 시간 동안 설교하는 분이니까. 이젠 그런 엄마를 좀 받아들여주자는 편인데, 오로한테도 쿠바에서 설명을 했어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이해를 좀 해달라고 했고, 수련회도 그래서 간 거고. 2주 프로그램이었는데 3일 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오로 제 폭탄머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별로 기분이 안 나빠요. 이 나라에선 이상한 외모니까. 그런 것까지 시비 걸고 싶진 않죠. 그런데 하루는 이안이를 안고 지하철을 탔는데 한국에서 돈 벌기 힘들겠다면서 할아버지가 천원을 주시는 거예요. 됐다고 하는데 굳이 받으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쳐다보고. 경제적으로 못산다고 해서 생각이 뒤처지는 건 아닌데 이해가 좀 안 갔죠.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자존심없는 바보는 아니거든요. 정호현 산책 나가면 다들 물어봐요. 쿠바 사람이라고 하면 왜 국적을 안 바꾸느냐고 하고. 통역하기 힘들 민망한 말들을 많이 듣죠. 오로 한국에 와서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어요.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영어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방송 외주제작사에서 컴퓨터그래픽 일도 하고, 스마트폰 앱디자인도 하고,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하고. 정호현 막상 돈 되는 일은 없지. 오로 한국하고 쿠바하고 좀 다른 게 있어요. 쿠바는 명쾌해요. 처음부터 나 돈 없다, 하지만 네가 좀 도와달라. 아니면 돈이 이만큼 있는데 할래 말래. 한국은 돈을 줄 것처럼 하다가 나중에 스윽 뒤로 빠져요. 외국인을 잘 신뢰하지 않죠.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면 그제야 잘하네, 뭐 이런 식이 많으니까. 다행히 지금은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 일을 하고 있어요. 학생들 가르친다고 하니까 한국 가족들이 마음을 여는 것 같은 느낌도 좀 들어요. 정호현 엄마 세대에게 흑인은 총질, 양공주, 튀기 뭐 이런 거잖아요.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엄마는 괴물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임신했다고 했을 때도 별로 안 반가워하셨어요. ‘아, 드디어 우려한 일이 벌어졌구나’, 뭐 이런 거죠. 출산할 때도 피부색하고 머리카락부터 확인하셨다니까요. 이안이가 세상에 나온 뒤론 예뻐하지만, 지금도 빗을 항상 갖고 다니세요. 자꾸 머리가 꼬부라진다면서. (웃음) 그보다는 오로와 같이 살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 때문에 힘들긴 해요. 올여름에는 정말 이혼할 뻔했어요. 육아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생활은 제가 다 처리해야 하니까. 은행 빚을 져도 제가 져야 하는 것이고. 뭐 그런 일로 다투다가 한번은 오로가 “관계로부터 휴가를 받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오로 아시아 사람들은 싫으면 싫다고 말을 안 해요. 자꾸 돌리죠.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도 많이 싸워요. 내가 말하는 대로, 그들이 말하는 대로 통역 좀 해달라고 해도 안 해줘요. 이성친구 사귀는 것도 그래요. 쿠바에선 네가 좋으면 좋다고 하지, 빙빙 돌리지 않아요. 정호현 예전에 <봄날은 간다>를 보여준 적 있는데, 오로가 저게 뭐냐고 그랬죠. 오로 한국 드라마는 정말 꽝이에요. 세달이 지나도 거기서 거기, 똑같거든요. 쿠바에서는 너 좋고, 내가 좋다, 그럼 관계 시작, 아니면 안녕, 이래요. 정호현 그만 살자 싶었을 때 오로가 한 말이 자극이 됐죠. ‘넌 헤어질 자세가 안되어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헤어지면 그 뒤에 여지를 안 두고 싶어 하잖아요. 반대로 오로 말은 아이까지 낳아놓고서 어떻게 남처럼 살 수 있느냐는 거죠. 결국 우리 이혼은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이혼파티가 가능할 때 하기로 했어요. 그게 가능할까. (웃음)

오로 원 나이트 스탠드, 그거 한국에서 처음 알게 됐어요. 부킹하는 거 보고도 엄청 놀랐죠.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남남이라니. 한국 사람들은 자기 물건이 상하면 굉장히 신경질을 내지만 관계가 깨지는 것에 대해선 별로 마음 아파하는 것 같지 않아요. 뭔가 선물을 주고받고 그걸로 확인하는 게 사랑이 아니에요. 같이 있고 함께 하는 것, 그게 쿠바식 사랑이죠. 정호현 오로가 클럽 가면 오해를 좀 받아요. 신나게 춤추다 ‘아, 고맙습니다’ 하고 다른 여자한테 가면 ‘쟨, 바람둥이’ 그러니까. 오로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섹스는 대부분 물리적인 섹스에요. 침대 위의 섹스만 생각해요. 관계들을 어떻게 맺고 푸는가가 더 중요한데. 나중에 한국의 심각한 성문화를 해학적으로 찍어보고 싶어요.

내년엔 국적 스와핑?

내년 이맘때쯤 오로와 정호현 감독은 떨어져 살고 있을 것이다. 정호현 감독은 허니문 베이비 이안과 함께 쿠바에서, 오로는 나 홀로 한국에서. 정호현 감독은 한국-쿠바교류재단을 만들기 위한 간사 역할을 맡아 봄이 되면 쿠바로 떠나 1년 동안 그곳에서 머물 예정이다. 오로는 ‘한국에서의 서바이벌’을 위해 고국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돌아와야 한다. 일종의 국적 스와핑을 시도하는 셈인데 과연 두 사람은 쿠바와 한국에서 자기들에게 주어진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을까. <쿠바의 연인> 속편은 어쩌면 두 사람이 각각 찍은 영상을 한데 이어붙인 흥미로운 형식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비바! 오로&훌리아&이안!’

정호현 한국-쿠바교류재단을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있어요. 사전모임의 현지 간사 격으로 가는데 1년 정도 머물면서 다음 작품 준비도 하고 그럴 생각이에요. 다음 작품은 오로한테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 관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쿠바에선 13∼14살 정도면 첫 성관계를 다 갖고, 18살 정도면 동거를 시작해요. 이혼율이 높은 편인데 기혼자들이 전남편, 전 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나 그런 것도 궁금하고. 연인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그걸 담아볼 생각이에요. 오로 일단 쿠바에 가서 릴렉스를 좀 하고 와야 애니메이션 작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상태라 창작이 불가능하죠. 현실의 쿠바에 대해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난 여전히 쿠바식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서. 정호현 쿠바에서 돌아오면 나랑 떨어져 사는데도 괜찮겠어? 오로 프리덤! 정호현 내가 널 좀 잡는 편이긴 하지. 이안이 아직 글을 못 읽는데 한번은 티저 포스터에 있는 ‘연애는 혁명이다’라는 카피를 보고서는 ‘엄마는 화났어요’라고 읽더라고요. 워낙 잔소리를 하니까.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샤워를 하는 오로를 보고 뭐라고 안 할 수가 없죠. 임신하고 쿠바에 1년 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의사가 약속한 진료시간에 안 나타나요. 그런데 1시간 이상 늦게 나온 의사에게 다른 임신부들은 상냥하게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아침인사를 하죠. 우리 같으면 ‘지금이 몇시냐’, ‘네가 내 시간을 뭘로 아는 거냐’ 그럴 텐데. 오로 만났으니까 중요한 거지. 정호현 이번에 가면 쿠바의 느긋함을 좀 배워야죠. 오로 한국 여성들과 달리 한국 남자들은 다른 나라 가면 관심을 못 받는다고 하니까 제가 팁을 하나 드릴게요. 쿠바에 가서 맘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눈을 쳐다봐요. 그 여자가 볼 때까지 기다리다가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 인사를 해요. 여자가 웃으면 이미 끝난 거예요.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돼요. 쿠바 사람이라면 그래도 되지만. 다가가서 말을 걸 때는 처음엔 ‘참 아름다우시군요’, 두 번째 멘트는 ‘당신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쿠바에서 본 적이 없다’고 톤을 좀더 높여서. 진짜 쿠바의 연인을 얻으려면 여자의 마음의 행간을 잘 읽어야 하는데 그건 다음 단계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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