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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파멸시키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 <안티크라이스트>
김도훈 2011-04-13

아내(샬롯 갱스부르)와 남편(윌렘 데포)이 섹스하고 있다. 어린 아들은 창가에서 쏟아지는 눈을 구경하다 추락해 죽는다. 남편은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에덴’이라 불리는 숲속 낡은 별장으로 함께 요양을 떠난다. 아내는 점점 더 미쳐가다가 결국 남편의 다리에 구멍을 뚫고, 성기를 짓이기고,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잘라낸다. 만약 이 이야기를 연출한 사람이 일라이 로스였다면 영화는 고문 포르노 장르로 훌륭하게 귀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티크라이스트>는 라스 폰 트리에 영화다. 그렇다면 이건 고문 포르노가 아닌가? 아니, 맞다. 다만‘예술적’ 고문 포르노라고 해두자.

라스 폰 트리에가 <안티크라이스트>에서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어둠속의 댄서> <도그빌> 같은 전작과 다를 바 없다.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파멸시키거나 주변을 파멸시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폰 트리에는 여성혐오의 역사를 여성혐오적인 필치로 묘사하는 데 재주가 있다. 사디즘의 세계에 사디즘으로 맞서는 전략이다. 미학적으로 <안티크라이스트>는 전작들보다 조금 더 나아간다. 폰 트리에는 거의 고문 포르노적인 신체훼손의 미학을 통해 관객의 이성과 오감을 흔들어댄다. 거기서 도덕적인 경계선을 찾아 더듬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안티크라이스트>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광증(狂症)의 물리적 체험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처럼 느껴진다. 미국 상영본과 비교하자면 한국 상영본은 조금 거세됐다. 샬롯 갱스부르의 클리 토리스 절단 장면이 삭제됐고, 윌렘 데포의 성기 훼손 장면은 뿌옇게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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