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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지금 현모양처여야 과거를 긍정하나요?

<써니> 속 조신한 엄마/아내를 독려하기 위한 판타지로서의 ‘과거’

‘여자’라는 기표와 ‘과거’라는 기표가 결합하면 뭔가 성적이고 불미스러운 기의들이 마구 달라붙는다. 이때 ‘여자’를 ‘엄마’로 대체하면 더욱더 불경스러운 조합이 된다. ‘여자’는 현재나 미래에 속한 것일 때, 지금 함께하거나 앞으로 함께하기를 꿈꾸는 대상일 때 안전한 존재가 된다. 혹은 한 남자의 과거 속에서 완벽한 첫사랑으로 추억됨으로써 애틋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써니>는 그런 고정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기획된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엄마’라고 부르는 탈성화된 존재가 실은 ‘자신만의 역사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주인공인 임나미(유호정)와 친구 하춘화(진희경)를 통해 반복적으로 진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서사는 오히려 그녀들의 진술은 철저하게 배반하고 있다. 과연 ‘써니’의 칠공주들을 통해 형상화된 현재와 과거는 온전히 그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주인공 임나미는 여고 시절에 대한 회상과 친구들과 25년 만의 재회를 통해 엄마나 아내가 아닌 자아의 정체성을 되찾은 것일까?

깨어지지 않는 모델하우스의 환상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묘한 불안감을 야기한다.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인테리어와 최신식 가전제품들로 무장된 주방과 거실의 풍경, 그리고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을 거친 듯한 아침상은 어딘지 비현실적이고 강박증적인 엄마/아내의 표상처럼 보인다. 무심한 남편과 짜증난 여고생 딸 사이에서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안절부절못하는 ‘스텝포드 와이프’ 임나미의 모습이 보인다. 병원에 있는 할머니에게 한번 가보자는 그녀의 부탁은 딸의 침묵과 남편이 건네준 수백만원짜리 상품권 봉투로 응답받는다. 집 안에 홀로 남아 커피를 마시며 토스트를 씹던 그녀는 현재 여고생들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임나미의 회고를 통해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학생 인권 조례’도 없이 교복과 두발에 모두 자유가 부여되었던 1980년대 중반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의 풍경이다. 벌교에서 서울로 전학 온 임나미의 시선은 그 시대가 낯선, 현재의 젊은 관객과의 소통을 수월하게 해준다. 그들의 시선은 ‘나이키’ 신발과 가방으로 무장한 서울 아이들 틈에서 ‘프로 스펙스’가 아닌 ‘스펙스’ 운동화를 신은 임나미의 열등감과는 약간 다르지만 거리감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1980년대를 기억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아이콘들을 유머러스하게 조합하고 익숙한 코드로 배치한다. 그 조합과 배치의 상투성으로 인해 ‘칠공주’는 프로그래밍된 행렬에 끼워맞춰진 성분들처럼 보인다. 임나미를 비롯한 칠공주 일파의 삶에서 1980년대적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기보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녀들이 거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라붐>, ‘써니텐’, <젊음의 행진>, <영 일레븐>,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와 같은 시대적 아이콘들이 영화, 광고, 쇼프로그램과 같은 대중 미디어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특화된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기억이기 때문이다. 진부한 아이콘들을 이어붙이되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전작 <과속스캔들>을 통해 입증된, 별로 탐나지 않는 아이템을 의외로 먹기 좋게 요리하는 강형철 감독의 특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임나미의 ‘과거’가 개인의 역사가 아닌 미디어가 반복 재생산하는 다소 공허한 대중적 판타지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가 2000년대 초반에 나왔던 1970∼80년대를 회상하는 복고영화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과거를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개입시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매체적 욕망으로 주조된 임나미의 과거는 그녀의 현재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가 야기했던 불안감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은근슬쩍 꼬리를 감춘다는 데서 확인된다. <아이 엠 러브>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 등과 같은 자신의 역사를 상실하고 어머니/아내가 되었던 여자들이 뒤늦게 자아를 찾아가는 영화에서 첫 번째 시퀀스의 완벽한 만찬은 깨지기 위해 존재했다. 그것은 부유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 식탁 위에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쳤던 그녀들의 지금까지의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써니>의 첫 시퀀스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나미가 회고와 재회를 통해 발견한 것은 무심한 남편과 냉정한 딸 사이에서 놓인 공허한 자아가 아니고 부유한 남편과 보호해야 할 딸을 갖춘 부유한 정상 가족의 안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과거는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만족하기 위해 동원된 마취제일 뿐이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나미에게 찾아온 변화라고는 기껏해야 피고용인 김 기사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던질 수 있는 배짱 정도다.

오늘의 행복을 열어주는 ‘돈 많은 친구들’

매점 난동 사건 이후로 ‘써니’의 멤버들은 퇴학당했고 조직은 해체되었다. 25년 뒤 그들은 가정주부, 보험아줌마, 술집 여자가 되어 만난다. 그들이 그 사이에 어떻게 살았는지 관객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것은 그들의 만남이 ‘흥신소’라는 매우 편리한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해후한 이후 현재의 삶을 나누는 데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과거에도 그들은 매점에서 빵을 뜯고 춤은 추었을 뿐 삶을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나미가 ‘써니’의 멤버들을 개인적으로 만난 것은 모임에서 가장 관계가 소원했던 수지뿐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써니’의 과거가 1980년대의 여고생이 누렸던 대중문화적 향수를 전시하는 목적을 위해 구성된 것이라면 ‘써니’의 현재는 그 향수를 공유할 수 있는 2011년 현재 중년 여성들의 위치 정립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 오늘의 중년 여성들을 좌지우지하는 유일한 가치는 ‘돈’이다.

‘돈’은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 임나미가 좋은 딸, 멋진 친구가 되는 것은 샤넬백을 엄마에게 선물할 수 있고 술집 여급이 된 친구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양주값 100만원을 쾌척할 수 있는 부를 선사한 남편 덕분이며 진희(홍진희)가 남편의 불륜에도 불행해지지 않는 것은 외도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받은 빌딩 덕분이다. 이 돈잔치의 피날레는 하춘화의 장례식이다. 하춘화가 임나미에게 네 덕분에 나도 역사가 있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상당히 당황스럽다. 하춘화의 럭셔리한 병실에서 그 둘이 내용있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피날레를 일종의 반전으로 마련해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의 고통을 한방에 날려줄 해결책을 하춘화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그녀가 현재 무엇인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꽁꽁 감춰둔 것이다. 덕분에 25년 만에 만난 ‘써니’의 다른 아줌마들도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인 ‘너 그동안 어떻게 살았니?’는 삼켜두고 오로지 서로의 외모에 대한 평가만 늘어놓기 바쁘다.

하춘화의 명품백에 달린 묵직한 자물쇠가 임나미의 딸을 학원 폭력에서 구원해준 상징물이 된 것처럼 하춘화의 유언장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친구도, 무개념 시댁에 매어 살고 있는 친구도, 지지부진한 실적의 늪에 빠진 친구도 한방에 구원한다. 여장부 같았던 춘화는 죽음으로써 친구들을 정상 가족으로 귀환시키고, 지나치게 아름답고 조숙한 첫키스를 보여줬던 수지의 현재는 끝까지 환상적으로 봉인된다. 능력있는 남편을 둔 착한 엄마 임나미가 하춘화가 죽은 이후 ‘써니’의 짱으로 임명됨으로써 그녀가 처한 현재의 갈등은 완벽하게 봉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2011년의 나미가 ‘써니’ 짱이 되는 순간 스프레이로 머리를 바싹 세운 언니들이 현재로 소환되었던 이유는 더욱 명확해진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25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여섯명의 친구를 만났던 것일까? 그녀의 과거는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견디게 하기 위해 존재하며 ‘써니’의 요란법석한 회고담은, 노는 언니로서의 과거는 현재의 현모양처를 위해 복무할 때만 아름답고 유쾌할 수 있는 법이라는 교훈을 던져준 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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