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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고지전>과 <퀵> 다 좋은데…
문석 2011-07-18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비만 주룩주룩 내리는 이 여름은 정말이지 여름답지 않다. 차라리 땀을 주룩주룩 흘릴 테니 햇살을 돌려달라고 외치고 싶기까지 하다. 세상의 여름이 이렇게 눅눅함과 퀴퀴함 속에 빠져 있는 와중, 극장가는 모처럼 여름다운 여름을 즐기고 있다. 크고 세고 정신없는 블록버스터영화들이 여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트랜스포머3>가 대박을 쳤고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도 ‘시리즈에서 최고’라는 평을 얻으면서 큰 흥행을 예고 중이다. 이후에도 <개구쟁이 스머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퍼스트 어벤저> <카우보이 & 에이리언> 같은 영화들이 줄 서 있으니,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갔던 지난해에 비해 훨씬 시끌벅적한 여름이 될 분위기다.

올 여름시즌이 기대되는 진짜 이유는 한국 블록버스터영화 때문이다. 지난해 이맘 때 개봉했던 <이끼> <아저씨> 같은 영화는 블록버스터라 부르기엔 좀 어색했던 까닭에 2년 만에 돌아오는 여름철 한국 블록버스터가 반갑게 느껴진다. 게다가 한국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여는 <고지전>과 <>을 차례로 보고나니 그 반가움이 배가된다. ‘웰메이드영화’의 계보를 잇는 <고지전>이 리얼리즘에 기반한 전쟁영화라면 엔터테인먼트 정신으로 충만한 <>은 쏜살같이 빠르게 진행되는 액션영화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접할 수 없었던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지만 워낙 종이 다른 영화라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평가하긴 어렵겠다. 다만 진지한 주제의식을 원한다면 <고지전>을, 아무 생각없이 즐기고 싶다면 <>을 권한다. 물론 진지하다고 해서 심각할 정도는 아니고 아무 생각 없다고 해서 허탈하지는 않은 수준이니, 데이트 상대에 끌려 원치 않는 쪽을 억지로 보게 되더라도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사실 제3자 입장에서는 7월20일 정면으로 격돌하는 두 영화 중 누가 이기는지를 관람하는 것도 흥미롭다. 또 8월 들어서는 <7광구>와 <최종병기 활>이 한주 차이를 두고 맞붙게 되니 올여름 한국 블록버스터의 최종 승자가 어떤 영화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물론 영화의 국적을 불문하고 블록버스터가 무시무시한 괴물임은 인정해야 한다. 전체 스크린을 90% 넘게 빨아들였던 <트랜스포머3>의 사례가 입증하듯, 블록버스터는 영화 생태계의 황소개구리 같은 존재다. 김기덕 감독이 낸 성명서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큰 규모의 영화야 개봉일을 하루 앞당기는 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고래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생존하고 있는 작은 영화들로서는 그 하루가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스크린 독점 현상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하지만 블록버스터의 득세가 유난히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여름엔 ‘아름다운 공생’을 위한 논의가 더 절실해 보인다. 한국 블록버스터들의 귀환을 환영하면서도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