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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애록고지의 풍경, 그 안에 자연스레 녹아든 배우들의 내공 <고지전>
장영엽 2011-07-20

고지의 주인이 수십번 바뀐, 가장 위태로운 전장의 중대장이 죽었다. 그것도 아군의 총으로. 강은표(신하균) 중위는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러 악어부대가 사수하고 있는 애록고지로 떠난다. 그런데 이 부대, 뭔가 수상하다. 대원들은 갓 부임한 선임의 지시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고, 춥다는 이유로 인민군복을 껴입고 부대 안을 돌아다닌다. 전쟁 중 헤어졌다 애록고지에서 재회한 강 중위의 친구 수혁(고수)은 “네가 여기서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고, 알아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다. 강 중위는 이들과 함께 지난한 전투에 참여하며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고지전>은 한국 전쟁영화의 통렬한 애국주의에 대한 짙은 피로감을 비집고 나온 영화다. 눈앞에서 동생뻘의 막내 병사가 피범벅이 되어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면 외면해야 하는 게 전쟁의 법칙이다. 감정을 죽이고 이성의 영역을 확장시켜 ‘전쟁 병기’가 되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담아낸 <고지전>의 화법은,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한 여타 전쟁영화에서 점령하지 못한 미답의 고지다. 이 솔직함으로부터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은 박상연 작가의 그림자를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매 순간 선택의 딜레마에 처한 부대원들의 모습에선 <선덕여왕>의 선덕이,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을 나누는 남북한 병사들의 모습에선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 소설 <DMZ>이 떠오른다.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전쟁영화엔 이질적인 서정성을 전하는 안개 자욱한 애록고지의 풍경과 그 안에 수증기처럼 자연스레 녹아드는 주·조연 배우들의 내공이 결합된 무엇이다. 첫 블록버스터를 연출한 장훈 감독이 새로운 고지에 올라섰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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