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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남녀의 이야기가 장르를 넘나들며 오감을 자극한다 <에일리언 비키니>
이영진 2011-08-24

도시지킴이를 자처하는 남자의 이름은 영건(홍영근)이다. 그는 듣도 보도 못한 임무를 스스로 부여한 뒤 밤마다 서울 시내를 배회하며 쓰레기를 줍는다. 가끔 쓰레기보다 못한 녀석들을 청소하기도 한다. 모니카(하은정)를 집 안에 들인 저간의 사연도 그러하다. 영건은 한 무리의 불한당들에게 쫓기던 모니카를 가까스로 구출한다. 모니카에게 연정을 품게 된 영건, 모니카도 영건이 싫지 않은 눈치다. 두 남녀는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데, 여자를 제대로 만나본 적 없는 숫총각 영건은 마음을 들킬까봐 안절부절못하고, 모니카는 영건을 유혹하려고 저돌적으로 덤벼든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에 맞춰 탱고를 추는 것이 가능할까. <에일리언 비키니>의 답은 ‘물론’이다. 온갖 장르의 요소들을 한데 끌어와 버무리고 뒤섞는다. 프롤로그만 슬쩍 볼까. SF 설정으로 운을 뗀 뒤 액션으로 시선을 모으고 서부영화 분위기로 마무리한다. 그것만으론 모자란다고, 공포와 코미디로 사이사이 양념을 치기까지 한다. 영건과 모니카의 사랑 놀이도 종잡을 수 없다. 가위바위보로 시작한 두남녀의 로맨틱한 설렘은 얼마 뒤 깨끗한 정자를 얻기 위한 에일리언 모니카와 순결 서약을 지키려는 지구 청년 영건간의 대결로 돌변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영건이 에일리언의 머리를 짓이길 때 떠올리는 건 과거 아버지의 폭력이다. 그 폭력의 유전자가 역설적으로 생명을 잉태할 때 황당무계한 외계인의 침입은 현실과의 유비(類比)를 갖게 된다.

시치미 떼고 무모한 열정을 즐기는 영화집단 ‘키노망고스틴’이 <이웃집 좀비> 이후 내놓은 두 번째 장편영화. 사건과 감정의 이음새가 매끄럽게 윤이 나진 않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뭉툭한 손맛은 색다르고 희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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