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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행크스] 좋은 사람의 성실한 승부수
장영엽 2011-08-25

<로맨틱 크라운>의 톰 행크스

“세상에, 역사학이라고?” 줄리아 로버츠가 웃음을 터뜨렸다. <로맨틱 크라운>의 홍보차 만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대학에 들어간다면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톰 행크스의 말을 전해들은 다음의 이야기다. “톰에게 역사 공부가 더 필요할까? 그의 머리 뚜껑을 열면 역사책으로 가득 차 있을 텐데!” 그녀의 말이 맞다. 톰 행크스만큼 역사에 박학다식한 배우도 드물 것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자. 주연을 맡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프로듀서로 참여한 <퍼시픽>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20세기 미국이 참전했던 가장 큰 전쟁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가 세운 제작사 플레이톤은 미국 대통령 존 애덤스와 존 F. 케네디의 암살사건을 드라마로 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톰 행크스는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에도 출연했다. 종교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이 세계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비밀조직의 음모를 파헤치는 바로 그 영화 말이다. 미국의 역사학자들에게 “역사드라마 영역에서 톰 행크스의 역량은 도서 분야에서 오프라 윈프리의 역량과 견줄 수 있다”고 평가받는 배우가 대학 신입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역사책을 읽는다고 상상하니 <로맨틱 크라운>에 함께 출연한 줄리아 로버츠가 재미있어할 수밖에.

아마 톰 행크스는 그가 읽었다는 역사책만큼이나 방대한 기록을 할리우드 역사에 아로새겼을 거다. 행크스는 현재 미국 박스오피스 사상 가장 높은 흥행수익을 기록한 배우다. 그의 총수익은 36억달러에 이르고, <아폴로 13> <유브 갓 메일> <캐스트 어웨이> <토이 스토리> 시리즈 등 무려 17편의 출연작이 1억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필라델피아> <포레스트 검프>로 잇따라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A급 톱스타들이 으레 겪는 그 흔한 스캔들도 없었다. 행크스는 1988년 결혼한 리타 윌슨과 23년째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고, 네 아이들을 위해 <폴라 익스프레스>에 출연을 결심한 자상한 아빠다. 할리우드에선 스티븐 스필버그, 론 하워드, 로버트 저메키스 등이 그를 총애하며, 미국인은 그런 톰 행크스를 ‘미국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미국이, 할리우드가 기회의 땅이 맞다면 55살의 톰 행크스는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기회를 풍요롭게 누려온 것처럼 보인다.

<로맨틱 크라운>은 <댓 씽 유 두> 이후 15년 만에 톰 행크스가 연출을 맡은 로맨틱코미디다. 얼핏 보면 이 작품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의 안온한 선택처럼 보인다.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 래리 크라운은 헌신적으로 일하던 직장을 잃고 이혼을 당하고 파산의 위기에 처해도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잃지 않는다. 제2의 인생을 찾겠다고 들어간 대학교에선 예쁜 여학생(구구 음바타 로)이 ‘대학생 스타일로 옷 입는 법’을 가르쳐주고, 시니컬한 여교수(줄리아 로버츠)는 인생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소박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영화의 톤을 한층 밝게 만드는 건, <포레스트 검프>가 입증해주듯이 세상에서 톰 행크스란 배우가 가장 잘해내는 역할이다. 그러나 행크스의 말에 따르면 그가 래리 크라운이 되길 자처한 까닭은 그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역할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래리 크라운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이란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톱스타와 벼랑 끝에 선 중년 남자의 공통점을 찾으려면 3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비록 20대 중반의 얘기지만, 톰 행크스에게도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출연하기로 했던 TV쇼가 취소됐다.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으며 나를 불러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아이 둘을 키우던 때라 슈니첼 가게에 취직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 순간은 (성공한 뒤에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오랫동안 가슴 아픈 시절을 마음에 품고 살았던 행크스는 <나의 그리스식 웨딩>으로 인연을 맺은 니아 바르달로스와 함께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인생의 실패를 맛본 중년 남자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래리 크라운이 대학에 입학한다는 설정 또한 지역의 작은 대학교를 다녔던 톰 행크스의 일대기를 반영한 것이다. “그곳은 별천지였다. 나보다 나이가 두배 많은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을 다 키운 중년 여성도 있었으며 베트남 참전 용사와 이혼한 남자까지 온갖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로맨틱 크라운>은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 준 전세계 팬들에 대한 톰 행크스의 ‘커밍아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수업시간에 질문을 던지고 스쿠터 타기를 즐기는 ‘아저씨’ 래리의 모습은 이제껏 아무도 알지 못했던 스타의 과거에 대한 일종의 코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톰 행크스의 자전적 고생담을 전제로 삼는다 하더라도 <로맨틱 크라운>이 외치는 휴머니즘은 지금 시대에 다소 낯간지러운 이야기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집세도 제대로 못 내는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둔 게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영화의 천진난만함은 톰 행크스에게도 난관을 안겨줬다. 그가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간 메이저 스튜디오의 관계자들은 실직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어두운 구석 한점 없는 이 영화에 투자를 거부했다. 그러나 행크스는 자신의 제작사를 만들고 2년 동안 필모그래피를 빈칸으로 남겨두면서까지 <로맨틱 크라운>을 완성해냈다. “이 영화는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냉소와의 싸움이다. 초라한 아파트에 살고, 차에 기름 넣을 돈이 없다고 해서 사람이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당신이 변하면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도 변할 수 있다. 그렇다. 이건 경제 불황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이 지적인 배우는 이제 성공과 명예를 넘어 자신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 영화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역할이 비단 평범한 일상의 미덕을 일깨우는 것일지라도, 되찾기 힘들 듯한 가치에 대한 복원을 주장하는 것일지라도, 이 수더분한 미국 아저씨의 다정다감한 이야기엔 언제나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게 바로 이 남자의 승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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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R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