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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술판 그리고 우리 삶의 양상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취중 보고서 <술에 대하여>
이영진 2011-08-31

한 청년이 주류회사의 술자리 면접에 임하고 있다. 입사시험에서 120번 떨어진 그다. 벼랑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던 청년들은 중년이 되어 대학가의 선술집을 찾는다. 술 몇 잔에 취기가 오르지만 그들이 30년 전 마시던 술 맛은 아니다. 건설사 직원들은 술 접대 하느라 마누라 얼굴 본 지 일주일이 넘었다고 자조하고, 무주클럽 회원들은 술 못 마신다고 인간 대접 안 해주는 상사를 향해 불만을 터뜨린다.

<술에 대하여>의 취중진담을 요약하려면, 조용필의 노래 가사가 요긴할 것 같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술이 달라졌고, 술판이 달라졌고, 그보다 앞서 우리 삶의 양상이 달라졌다고 <술에 대하여>는 보고한다. 술 혹은 술판은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타임머신을 탄 카메라는 자전거 페달을 번갈아 밟듯이 과거와 현재를 비추는데, 그때마다 술판의 모양새는 만화경처럼 바뀐다. 파쇼 타도를 외치던 청년들에게 술집은 더없이 아늑한 아지트였던 반면, 취업 앞둔 청년들에게 술집은 정신줄 놓아선 안되는 시험장이다. 술잔을 나누며 손톱 밑에 낀 기름때를 지우던 아버지들에게 술집은 너나없는 사랑방이었지만, 아버지가 된 그의 아들들에게는 위장약으로 무장하고 폭탄주를 투척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한때 예술가들에게 술판은 영감을 나누는 향연의 자리였으나, 이제 술이 영혼을 고취시켜준다고 철석같이 믿는 예술가들은 많지 않다. 술잔에 술은 남았는데 무엇이 사라진 것일까. 격정이 사라졌고, 낭만이 걷힌 것뿐인가. 생활필수품이었던 술이 개인의 기호품으로 변한 지금, 여전히 술을 마구 들이켜는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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