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제발 남자들의 액션을 복제하지 말라

한국영화에서 멋진 여전사 캐릭터를 만들려면?

<푸른 소금>

좋은 캐릭터를 만드는 모범답안 같은 것은 없다. 고로 이른바 ‘여전사’ 캐릭터에 대한 다음 의견들은 내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이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멋진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들어보고 판단하시라.

우선 ‘여전사’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내 생각에, 한국 언어문화에서 가장 위험한 점은 자기가 만들어낸 말의 함정에 스스로가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들은 너무 쉽고, 거기 일단 걸리면 그 말이 대표하는 막연한 큰 그림밖에 보지 못한다. ‘여전사’라는 단어부터가 그렇다. 우리나라 영화 저널리스트들이 ‘여전사’라고 부른다고 해서 엘렌 리플리와 뱀파이어 슬레이어 버피가 같은 종류의 캐릭터인가? 만약 이들을 하나로 묶어 대충 상을 하나 만들고 ‘나는 여전사 영화를 만들겠어!’라고 선언하면 뭐가 나올까? 훌륭한 여전사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여전사’라는 단어를 버리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캐릭터가 스스로 어떻게 설 수 있으며 액션 안에 어떻게 융합되느냐이다. 결코 ‘여전사’를 먼저 생각하지 말라!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 불필요한 집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여전사’ 캐릭터의 대부분은 이것들에 쓸데없이 신경 쓰다가 망하고 만다. 우선 액션물이라고 억지로 남자를 흉내낼 필요는 없다. 남자들이 다수인 영역에 들어왔다고 꼭 남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억지로 여자처럼 구는 것보다 차라리 적당히 남자처럼 구는 게 낫긴 하다. 일반 관객이 ‘남자 같다’고 생각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그냥 중성적인 것이니까. 어떻게든 ‘여성성’을 보여주자고 억지로 장면들을 끼워넣으면 그 주인공은 권총만 든 비키니 모델이나 신파극 주인공처럼 되어버린다. 필요하다면 드라마를 넣어라. 눈요기 장면을 넣는다고 뭐라 하지도 않겠다. 하지만 ‘여성성’을 심어주기 위해 억지로 넣지는 말라. 주인공이 여자임을 그렇게 기를 쓰며 증명할 필요없다. 관객은 장님이 아니다. 정 ‘여성성’을 넣고 싶다면 진짜 여성을 만들라. 여기서 진짜 여성이라는 건 스포츠 잡지의 수영복 화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성 캐릭터만의 액션을 개발하라. 모든 액션을 남자들처럼 꾸미는 건 그냥 게으르다. 영화에서라면 40kg대의 호리호리한 여자라도 얼마든지 액션에 투입할 수 있지만, 몸무게가 배나 차이나는 남자와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건 맞지 않다. 가장 기초적인 물리학이 길을 막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같은 걸 그대로 쓰는 대신 새로운 어휘를 찾아야 한다. 이건 꼭 여자들의 문제도 아니다. 이소룡과 영춘권이 바로 그런 사례가 아니던가. 제발 남자들의 액션을 복제하지 말라. 여성 스스로의 액션 언어를 찾게 하라.

그리고 부탁이니 제발 프로페셔널해지라. 이 세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딱 남자만큼만 해도 여자니까 저 정도밖에 못한다는 말이나 듣는다.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10% 이상은 더 해서 스스로의 유능함을 입증해야 한다. 그 다음에 연애를 하건 갈등을 하건 하라.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총질도 제대로 안 하면서 허송세월이나 하고 있는 <푸른 소금>의 캐릭터 같은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짜증이 난다. 그럴 거라면 처음부터 왜 총을 잡았냐고.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