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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하지만 뭉클한 절름발이 경주마의 감동실화 <챔프>
송경원 2011-09-07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시신경을 다친 기수 승호(차태현)는 남겨진 어린 딸(김수정)을 키우며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이런저런 사고 끝에 제주도까지 도망쳐온 승호는 제주기마경찰대에서 경주마 ‘우박이’를 만난다. 같은 사고에서 새끼를 잃고 다리를 다쳐 더 이상 사람을 태우지 않는 우박이. 시력장애 기수와 절름발이 경주마는 절망의 끝에서 다시 한번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감동실화. 우리는 유난히 감동 드라마에 무한 애정을 보낸다. 극장을 나설 때 눈물 한 방울쯤 흘려줘야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은 눈물을 통한 소통에 익숙한 정서 때문이다. 덕분에 다소 정신없고 억지스러울지라도 끝에 가서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면 작품 전반이 호평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만드는 쪽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음은 당연지사. 감동적인 마무리는 어느새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공식이 되었다. <챔프>는 정석대로 한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스포츠 감동 드라마의 길을 답습한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배우가 축적해놓은 이미지, 실화가 주는 생생함, 소재 자체의 따뜻함 등 영화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서 한 방울의 눈물을 향해 질주한다. 다만 그것으로 모든 허물을 덮기엔 단점이 너무 선명하게 눈에 띈다.

이환경 감독은 자칭 말(馬) 전문 감독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각설탕>에서 쌓은 노하우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후반의 본격적인 경주장면부터는 드라마도 탄력을 받고 집중력있게 감동으로 달려가는 리듬감도 좋다. 특히 경주장면이 주는 박진감은 압권이다. 그러나 그 짜릿한 감동을 맛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다. 영화는 생각보다 길고 조미료를 많이 뿌린 음식처럼 전체적으로 과잉이다. 특히 초반에는 보는 사람이 초조해질 정도로 과하게 친절하다. 없어도 좋을 어색한 웃음, 지나친 설명, 쉬지 않는 음악, 늘어지는 장면은 관객을 지치게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잉에도 불구하고 정작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종종 생략해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덕분에 영화는 뛰어난 조연배우들의 재능을 과신하고 낭비해버린다.

그럼에도 <챔프>는 전달해야 할 것은 놓치지 않고 확실히 전달하는 저력이 있다. 늘 필요한 만큼 해주는 차태현은 이제 감동 전달에서는 믿고 쓰는 배우가 되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고, 아역 김수정의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인상적인 배우는 우박이 역의 말(馬)인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배우 못지않은 압도적인 존재감과 깊은 눈빛연기를 선보인다. <챔프>는 영화 내내 반복하는 ‘인생은 추입(힘을 비축한 뒤 한번에 치고 나가 역전하는 것을 말하는 경마용어)이다’라는 말처럼 후반의 폭풍 감동을 위해 모든 것을 퍼붓고 놀랍게도 초반의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킨다. 식상하지만 뭉클한. 말밥 한번 먹으면 경마장을 떠날 수 없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감동 실화 드라마에 한번 중독되면 극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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