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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꾼의 희생과 좌절에 무력하게 던지는 공감의 제스처 <오래된 인력거>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기쁨의 도시’ 콜카타. 누군가에게는 수행과 깨달음의 공간인 그곳에서, 길이라는 인생의 비유를 맨몸으로 겪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동차와 행인이 분주히 오가는 좁은 도로에서 인력거를 끌며 쉼없이 달린다. 작열하는 태양에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 바닥 위로 바퀴 그림자가 흔들리는 동안, 이들의 맨발은 항상 저만치 앞서 다부진 움직임을 이어간다. <오래된 인력거>의 주인공 샬림은 40여년 동안 콜카타의 길 위에 맨발로 삶을 기록해온 인력거꾼이다. 그는 병든 아내와 여섯 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가난과 연이은 좌절 속에서도, 샬림은 온 가족이 함께 살 집을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이성규 감독은 12년 전 샬림의 인력거를 탔던 인연으로 샬림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감독은 이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결과 이들의 꿈이 자라고 무너지는 과정이 마치 극영화처럼 다큐멘터리에 남게 되었다. <오래된 인력거>는 촬영에 공을 들인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강점은 콜카타의 활기와 그늘을 동시에 포착하는 디테일에 있다. 특히, 몬순 우기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도로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빗물이 정강이까지 차오른 길 위에서 택시와 인력거, 우산을 든 행인들은 시비가 붙고 흥정을 벌인다. 자동차 경적에 피리 소리까지 가세한 소란 속에서, 비에 젖은 샬림의 몸은 고달픈 삶의 조건과 이를 압도하는 단단한 생명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소설가 이외수의 내레이션은 도시의 풍경 위로 절도있게 흐르지만, 종종 내레이션의 해석이 무색하리만치 인력거꾼의 육체와 표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정서와 여운을 전달한다.

영화는 인력거꾼의 빈곤을 카스트제도라는 역사적 조건을 통해서 진단한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을 달려왔지만 늘 제자리에 있을 뿐인 맨발의 한 인간을 더욱 긴 시간의 터널 속에서 지켜보도록 만든다. 친절하고 성실했던 샬림은 결국 연이은 좌절에 흐느끼며 촬영을 거부한다. 감독은 그를 끌어안으며 사과와 공감을 전하지만, 그의 왜소한 등에 놓인 무거운 짐에 비해 타인의 공감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오래된 인력거>가 이 한계를 부인하는 것 같지는 않다.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도입부와 엔딩에서 촬영을 거부하는 샬림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의 고통과 카메라의 거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샬림이 인력거에 싣고 달리는 것을 가족이라 해석함으로써 그의 희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의 좌절에 작은 위로를 건네고자 했다. 그러나 가족 때문에 샬림이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마지막 내레이션은 이제껏 목도한 그의 절망과 역사의 질곡을 부성애와 삶의 균형감각 속으로 급히 수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부서진 꿈의 조각을 밟으며 다시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내딛는 맨발에 놓인 깊은 절망과 숭고한 힘에 굳이 공감의 제스처나 결론이 필요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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