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가족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문석 2012-01-16

유난히 설이 빨리 다가온 까닭에 극장가만 부산한 게 아니다. <씨네21> 또한 송년호, 신년호를 만든 지 두주 만에 설 합본호를 내게 됐다. 새해를 맞아 처리해야 할 잡무까지 겹친 탓에 식구들의 피로도 두껍게 쌓여 있는 분위기다. 그래도 일년에 두번 있는 ‘합본호 휴가’에 대한 희망 덕분인지, 합본호를 만드는 동안 모두 힘을 짜내준 듯해 고마운 마음이다.

독자 입장을 헤아려볼 때 합본호는 여러모로 괜찮은 아이템일 법하다. 같은 값에 보다 많은 읽을거리가 있으며 선물까지 주니 말이다. 만드는 입장이지만 나 또한 <씨네21> 합본호가 은근히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 그건 이영진 기자가 썼던 한국영화의 회고담 때문이다. 명절 극장가의 풍경이라든가 한국영화 마케팅사, 추석 한국영화 라이벌전 등 옛 충무로의 뒤안길을 여행하게 해주는 이 기사들은 연휴에 볼 만한 쏠쏠한 재미를 줬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최근 몇년 회고담을 싣지 못했는데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합본호에 실린 ‘1950-2011 한국영화 속 인물들의 고향 연가’는 반갑다. 그는 한국영화를 통해 드러난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귀향의 풍경을 읽어냈는데, 시대의 흐름이 엿보이는 와중에 애잔한 무언가도 느껴진다. ‘명절’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귀향’이라는 단어는 또 곧장 ‘가족’과 연결된다. 50년대의 <돈>부터 60년대의 <육체의 고백>, 70년대의 <삼포 가는 길>, 80년대의 <깊고 푸른 밤>, 90년대의 <그들도 우리처럼>, 2000년대의 <무산일기>까지, ‘귀향’이라는 키워드로 걸러진 이들 영화는 부유하고 찢어지고 희미해지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쓴이의 취사선택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영화의 프리즘을 통해 본 가족이란 어딘가 쓸쓸하고 뭉클하면서도 신산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 같은 시대의 거센 파랑 앞에 가족이란 나무판자로 만든 방파제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니 <씨네21> 합본호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다. 그건 연휴를 홀로 지내는 솔로들을 위한 기획이다. 한때 우리는 가족과 그닥 살갑지 않은 독자들이 연휴에 혼자 방구석에서 독파할 만한 만화, DVD, 게임 등의 깨알 같은 리스트를 정리하곤 했는데 어느새부턴가 지면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그것은 <씨네21> 식구들의 변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고령의 미혼자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절대다수가 그런 처지였다. 이젠 1월14일 결혼한 김성훈 기자처럼 가족을 꾸리는 경우가 속속 생겨나니 기획 방향에도 변화가 생긴 게 아닐까. DKNY(독거노인) 브랜드를 걸치고 노년을 맞이할 두려움 때문이건 등을 맞댈 사람이 필요해서건, 어쨌든 가족은 계속 생길 것이고 유지될 것이니 말이다.

설을 맞아 귀향하시는 분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에게 따뜻한 인사말들 건네시길. 반가움을 가진 지 한 시간 만에 짜증과 분노로 가득 차게 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