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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영화는 왜 영화를 추억할까
문석 2012-02-20

영화는 100년이 조금 넘는 역사 속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은 듯 보인다. 19세기 말 토머스 에디슨과 이스트먼 코닥, 그리고 뤼미에르 형제의 공적으로 탄생한 영화는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2D에서 3D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어왔다. 그리고 또 다른 기술의 혁신이 찾아올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변화를 ‘발전’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인한 표현양식의 변화가 영화의 본질까지 바꾸어놓았느냐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

최근 개봉한 <아티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대의 할리우드를 그린 이 영화는 흑백화면에 무성영화 기법(이 영화의 95%는 무성이지만 중요한 순간 소리가 튀어나온다)으로 만들어졌지만 현대의 관객이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번주 ‘전영객잔’에서 장병원 평론가는 <아티스트>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변증법적 진화론의 역사로 영화사의 한순간을 풀이한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사의 중요한 한순간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엮어낸 이 영화는 대사와 사운드가 영화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마틴 스코시즈의 신작 <휴고> 또한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CG가 듬뿍 가미됐고 3D효과까지 두드러지지만 <휴고>의 이야기는 1900년대 초반의 영화사를 통해 현대 극영화의 ‘시조’ 격으로 평가되는 <달나라 여행>(1902)의 감독 조르주 멜리에스의 꿈과 삶을 보여준다. 전설적인 할리우드 프로듀서 데이비드 O. 셀즈닉의 친척 브라이언 셀즈닉이 쓴 원작 <위고 카브레>를 그대로 옮긴 것이긴 하지만, <휴고>는 대단한 영화광이자 최근 들어 필름 복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스코시즈의 관심사가 반영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있다. 그건 최초의 영화로 기록되는 <기차의 도착>(1895)에 관한 것이다. 여러 영화사 책은 살롱에 모여 이 영화를 보던 관객이 실제로 기차가 스크린 밖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고 전하는데, <휴고>는 기차가 뛰쳐나오자 관객이 놀라는 모습을 3D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는 관객에게 모든 영화는 결국 3D로 인식된다는 뜻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두 영화 모두 아이디어에 비해 알맹이는 다소 헐빈하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최첨단 기술과 대자본을 이용해 초기 영화사를 되돌아보는 스코시즈의 <휴고>가 너무 호사스럽게 보여(화려한 프로덕션 디자인만큼은 정말 끝내준다!) 소박한 <아티스트>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도만큼은 매우 흥미롭다. 두편 모두 영화(사)에 관한 영화라는 점뿐 아니라 기술의 변화와 영화의 관계를 조망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신선하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기술이란 이를 받쳐주는 수단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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