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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멜리에스, 영화 매체의 선구자
주성철 2012-03-08

<휴고>에도 나오듯 영화 역사상 최초의 영화가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이라면, 멜리에스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소년 휴고가 기차역에서 늘 ‘열차의 도착’을 보는 아이라는 설정은 꽤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뤼미에르와 멜리에스의 차이는 무엇일까. <옥스포드 세계영화사>는 조르주 멜리에스를 두고 “아마도 영화에 있어 ‘픽션’이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사람”일 것이라 말한다. 풍자만화가이며 마술가였던 그는 영화에도 나오듯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고 상영했던 단편영화에 흠뻑 매료됐다. 이후 뤼미에르의 카메라와 비슷한 카메라를 만든 뒤 있는 그대로의 거리 풍경과 하루가 경과하는 순간들을 필름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가 지나가는 동안 카메라가 정지해버렸고 카메라를 고친 뒤에는 렌즈 앞으로 장의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그것을 상영했을 때 다가오던 버스는 순간 장의차로 바뀌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영화적 마술’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극적인 사건이었다. 말 그대로 그것은 마술이자 픽션이었다. 버스가 장의차로 바뀐 것이 우연이었다면 그는 그 우연을 영화적 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여러 ‘준비’와 ‘연출’이 필요함을 깨닫게 됐다. 세계 최초의 스튜디오 중 하나가 그렇게 탄생했다(<휴고>에서 그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이가 바로 카메오 출연한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다).

멜리에스는 1896년부터 제작을 시작했고 1912년에 이르기까지 수백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런던, 바르셀로나, 베를린, 그리고 뉴욕에도 배급사무소를 세우면서 뤼미에르 형제를 압도했다. 그 스튜디오는 발코니, 뚜껑문, 그리고 이동개병 등의 연극장치들로 빽빽하게 가득 채워진 형태였다. 멜리에스의 영화사 ‘스타 필름’ 스튜디오는 화면 내의 모든 요소를 통제하며 광범한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풍자만화가이기도 했던 그는 초기 형태의 콘티는 물론 세트와 의상디자인까지 도맡았다. 게다가 종종 직접 주연을 맡거나 한편에서 여러 역할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영화적 개념은 태초부터 3D였다. 가령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인어공주>의 경우 카메라 앞에 그가 꾸민 해저세계는 배경 그림 앞에서 의상을 입은 여배우, 그리고 카메라 앞에 놓인 어항 등 여러 ‘겹’으로 이뤄진 형태였다. 영화에서 재현되는 <달세계 여행>의 세트도 그렇다. 그의 영화는 결코 ‘평면’이 아니었으며 그는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선구자이자 예언자였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파테’사 등 다른 경쟁사들이 몸집을 늘리고 또 다른 형태의 영화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1908년부터 기울기 시작했고 1913년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데이비드 보드웰은 <영화예술>에서 그가 영화사에 끼친 영향과 의미에 대해 “영화를 리얼리즘으로 구속시키는 것은 미장센을 정말로 빈곤하게 만들 것이다. 영화예술에서 이 미장센 기법의 1인자는 바로 조르주 멜리에스”라고 말했다. 태생부터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영화를 새로운 형태로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현실에 대한 정상적 관념을 초월하는 힘을 갖고 있으며, 멜리에스의 미장센은 그로 하여금 영화에 있어 완전히 상상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멜리에스 마술의 유산은 전적으로 즉흥적인 상상력에 따르는 유쾌한 비사실적 세계”라는 말과 함께.

마술사, 영화감독의 또 다른 이름

브라이언 셀즈닉은 게이비 우드의 <에디슨의 이브: 기계 생명에 대한 마술적 탐구의 역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위고 카브레>의 윤곽을 잡았다. 그 책에는 멜리에스의 자동인형(내부 시계장치에 의해 돌아가는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기계인형)이 박물관에 기증되었지만 눅눅한 다락방에 처박혀 있다가 결국은 불타버렸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그는 “한 소년이 쓰레기 더미에서 그 자동인형을 발견하는 모습을 상상했고, 거기에서 바로 위고의 이야기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아마도 <휴고>의 자동인형은 마틴 스코시즈에게 있어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영화의 순수성 그 자체일 것이다. 자동인형과의 만남은 수많은 영화 소년소녀들이 생애 처음으로 영화와 마주한 바로 그 꿈의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술이라는 아름다운 눈속임이기도 하면서 소박한 기계 기술의 변형이었다. <휴고>는 한 소년의 눈을 통해 그 비밀과 창조의 근원을 탐색해나가는 영화다.

원작에서 휴고(에이사 버터필드)의 아버지(주드 로)는 이제껏 그가 보아온 자동장치들에 대해 “대부분 마술사가 마술을 부리는 데 사용하려고 만든 것”이었다고 말한다. “마술사 중에는 시계공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단다. 그들은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기계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서 이런 자동인형들을 만들었지. 오로지 사람들을 놀라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어. 관객은 어떻게 해서 인형이 춤을 추고 글씨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지 몰랐기 때문에 마술사가 인조인간을 창조해냈다고 생각했지”라고도 덧붙인다.

이후 여섯살쯤 되자 아버지가 갖다주는 시계를 고칠 수 있게 된 휴고는 계속 자동인형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휴고가 처음으로 자동인형을 마주하는 순간은 소년 스코시즈가 맨 처음 극장에서 영화와 조우했던 그 순간일 것이다. “휴고는 그것을 처음 본 순간 그 느낌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는 들여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안타깝게도 많이 망가진 상태였지만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자동인형을 알게 된 뒤 휴고는 마술사가 되고 싶었고, 그 마술사는 바로 영화감독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스코시즈의 영화여행

<휴고>는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여행>(1995)과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1999)에서 이어지는 마틴 스코시즈의 ‘나의 1930년대 프랑스 영화여행’이기도 하다. 소문난 영화광 마틴 스코시즈가 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995년에 만든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여행>은 장장 4시간에 걸친 미국 영화사로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이었다. 친절한 영화선생님이 되어 4살 때 본 영화, 엄마와 처음 간 극장을 비롯해 미국영화의 아버지 G. W.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1916) 등 그를 압도한 영화 등을 설명해나갔다. <휴고>에서 휴고와 이자벨(크로 모레츠)이 르네 타바르의 <꿈의 발명>을 읽을 때도 바로 그 <인톨러런스> 장면이 삽입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감독을 마술사(illusionist)로서의 감독, 사기꾼(smuggler)으로서의 감독, 성상파괴자(iconoclast)로서의 감독 등 세 부류로 나누었다. 영화에서 새로운 마술과도 같은 편집기술을 선보인 D. W. 그리피스와 F. W. 무르나우가 대표적인 마술사로서의 감독이라면 조르주 멜리에스는 바로 그 첫 번째 마술사였을 것이다.

또한 그는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통해 자신의 이탈리아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은 연대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의 조부모는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한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민자였고 어려서 극장에서 본 이탈리아영화들을 통해 가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는 비스콘티와 펠리니, 안토니오니와 로셀리니 등 거장의 영화들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가는 여행이었다. 그러니까 <휴고>는 ‘사적인’이라는 단서가 붙은 앞서 소개한 두 영화들과 비교할 때, 미국과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나선 프랑스 여행임과 동시에 세계영화재단의 창립자로서 뭔가 책임감있는 ‘공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목적은 바로 세계 영화사가 3D로 시작했다는 스코시즈의 선언이다. 뤼미에르의 열차가 도착할 때 사람들이 ‘기차가 달려온다’며 소동을 부렸던 일, 멜리에스의 달에 여신과 땅과 우주인들이 서로 겹쳐 서서 움직이는 황홀한 장면 등 스코시즈는 3D의 근원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영화를 이루는 토대가 됐음을 분명히 한다. “멜리에스의 가장 뛰어난 점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영화적 기법의 대부분을 그가 다 만들었다는 점이다. 근래 들어 영화사 학자들은 과거 멜리에스의 영화들을 보면서 마치 거친 3D 화면의 초기 단계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30년대부터 50년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학공상, 판타지영화의 맥을 잇는 해리하우젠, 스필버그, 루카스, 제임스 카메론까지 일직선상에 있다. 멜리에스는 우리가 지금 컴퓨터로 그린 스크린과 디지털로 하는 작업을 모두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만 가지고 해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런 스코시즈에게 <위고 카브레>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실화다. 그는 파산한 뒤 게어 몽파르네스역 장난감 가게에서 거의 16년간 일했다. 책을 처음 읽고 장난감 가게에서 일하는 노인이 조르주 멜리에스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한다. 멜리에스를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년에 대해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로서는, 재단의 수장으로서 세계 영화사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 어쩌면 <휴고>였는지도 모른다.

마틴 스코시즈의 옛날 옛적 3D영화들

<하우스 오브 왁스>부터 <다이얼 M을 돌려라>까지 <휴고>는 3D 기법에 대한 마틴 스코시즈의 애정을 듬뿍 담아냈다. 그가 청소년기에 영화관에 다닐 때 거의 모든 장르에서 3D 기법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가 1953년 처음으로 본 3D영화는 안드레 드 토트 감독의 <하우스 오브 왁스>였다. 하지만 스코시즈에게 3D 기법을 영화에 사용하여 이야기를 돋보이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한 영화는 바로 한해 뒤 개봉한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였다. 그리고 그것이 긴 세월을 지나 <휴고>에까지 이르게 됐다. 그는 그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다이얼 M을 돌려라>는 굉장한 영화였다. 3D가 하나의 효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공간을 내러티브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3D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 기법이 배우를 더 돋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마치 조각상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제 평면적인 느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기와 동선이 잘 맞기만 한다면 연극과 영화가 한데 합쳐진 듯하지만 연극도 영화도 아닌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이 늘 기대했던 것이었고 3D영화를 반드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하여 스코시즈는 3D 영화 제작의 기본 지침으로 스탭들에게 <하우스 오브 왁스>와 <다이얼 M을 돌려라>를 보여줬다. 스코시즈의 촬영감독인 로버트 리처드슨 역시 3D영화 작업은 처음이었다. 그는 “내가 <휴고>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머리 속에 그려지는 느낌은 휴고가 달려가고 있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휴고의 눈에는 어떤 갈망이 들어 있다. 3D 기법을 사용하면 얼굴 표정이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사람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고나 할까. 보다 더 가까운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3D는 관객과 캐릭터 사이에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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