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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는 가장 아름다운 레코드를 남기고 떠났어요
김도훈 2012-03-29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가 처음으로 만난 <슬로건>(1969).

-세상의 모든 딸들이 당신 같은 어머니를 갖고 싶어 할 거예요. 그러고 보니 올해는 ≪멜로디 넬슨≫ 앨범의 40주년이기도 하네요. =아아, 정말 근사한 일 아닌가요?

-그러니까요! 이번 공연은 세르주를 기념하는 동시에 ≪멜로디 넬슨≫ 앨범(세르주 갱스부르가 1971년에 발매한 컨셉 앨범)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 앨범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세르주가 그 앨범을 처음 발매했을 땐 판매고가 아주 안 좋았어요. 앨범이 나왔을 때 동생에게 “이건 천재적인 앨범이야. 모두가 사게 될 거야!”라고 소리쳤지만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웠죠. 그런데 세르주의 말년에 젊은 사람들이 다시 ≪멜로디 넬슨≫을 재발견하고 재평가하기 시작했어요. 프랑스에서 세르주는 오랫동안 술주정뱅이에 TV에 나와서 웃기는 소리만 해대는 고약한 늙은이로 간주됐는데, 오히려 젊은이들이 그를 영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의 이전 경력을 훑다가 ≪멜로디 넬슨≫을 다시 건져올린 거죠. 세르주가 죽기 전에 그런 환호를 보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웃음) 재미있지 않아요? 사람들이 이 앨범을 이해하는 데 무려 40여년이 걸린 셈이니까요. ≪멜로디 넬슨≫은 스스로 전설이 된 앨범이에요.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최고의 걸작 앨범 ≪멜로디 넬슨≫(1971).

-저 역시 ≪멜로디 넬슨≫ 앨범은 조금 늦게 들었어요. 저에게 세르주와 제인 버킨의 음악에 대한 기억이라면 70년대 말과 80년대 한국 라디오가 끊임없이 틀었던 <Yesterday Yes A Day> 같은 초기작들이에요.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요. 그 시절 한국에는 가본 적도 없어 요. 그런 나라의 사람들이 나와 세르주의 노래를 들으며 자라다니! (웃음)

-그리고 악명 높은 <주뎀므 므아 농 플뤼>(Je T’aime… Moi Non Plus)가 있습니다. 당대의 한국에서도 금지곡이었던. 이번 공연에서도 이 노래는 부르지 않을 예정인가요. =한번도 부른 적 없어요. 세르주가 살아 있을 때도 함께 공연에서 부른 적이 없어요. 오로지 녹음실에서만 불렀죠. 그리고 세르주가 죽은 지금 그 노래는 부를 수 없어요. 세르주 없이는 불가능해요.

-세르주가 남긴 유산 중에서 당신이 가장 그리워하는 건 뭔가요. 역시 음악인가요? =아… (오랜 침묵)… 그는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레코드들을 남기고 떠났어요. 그가 죽기 전에 만들었던 음악들, 특히 <Baby Alone In Babylon>처럼 모골이 송연하게 아름다운 음악을 모두 저에게 부르도록 해줬죠. 세르주는 내가 그를 떠난 뒤에도 나를 자신의 뮤즈라고 여겼어요. 당시 나는 새 남편인 자크 드와이옹, 샬롯과 살았고, 세르주는 새 연인인 밤부와 살았어요. 하지만 자크와 밤부는 세르주가 밤 12시에 갑자기 우리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들이닥치는 행동을 이해해줬어요. 내가 가장 슬픈 건 “헤이 세르주! 너 이거 어떻게 생각해? 저건 어떻게 생각해?”라고 뭐든 물어볼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다시는 세르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을 거란 사실이 서글퍼요. 그의 유머가 그리워요. 그는 정말 끔찍하게 웃긴 남자였어요. 유행하는 농담을 적어둔 수첩도 있었다니까요. 종종 부엌에 서서 그 농담을 읽어주곤 했는데…. (웃음)

-세르주 갱스부르와 당신은 영원히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영혼이군요. =헤어진 뒤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죠. “사람들이 우리 둘이서 노래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데 어쩌겠어. 난 밤부와 살고 넌 자크와 살지만 사람들은 신경 안 써. 우리가 함께이길 바라. 우리는 신화야. (웃음)” 한번은 캐나다에 공연하러 갔다가 TV에 출연했는데 세르주가 그러는 거예요. “우린 같은 방에서 자요.” 저는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라고 소리 질렀죠. 정말 무시무시한 공포였다니까요. (웃음) 그는 TV에 나올 때마다 “그래요. 제 인과 함께 밤을 보냈어요”라고 농담하는 걸 좋아했어요. 제 사생활을 파괴하면서 그는 즐거워했죠. (웃음)

버킨백은 더이상 내 곁에 없어요

-지지난해에 프랑스에서 개봉한 전기영화 <내 사랑, 세르주 갱스부르>(Gainsbourg, Vie heroique)를 봤나요? =아뇨아뇨아뇨아뇨. 절대 보고 싶지 않아요.

-꽤 호평을 들었던 걸로 아는데, 어떤 이유에서 보고 싶지 않나요. =시나리오가 정말 싫었어요. 감독에게 몇 가지를 바꿔달라고 요구했었죠. 특히 세르주의 여동생들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들. 게다가 에릭 엘모스니노가 가짜 코를 달고 흉내내는 것도 별로였죠. 사위가 그 영화를 보고는 “영화 속의 세르주를 사랑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더군요. 세르주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영화라면 볼 이유가 없어요. 세르주와 영화를 찍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그는 분장한 자신의 보디더블에게 “나는 너처럼 흰머리가 많지 않아!”라고 말하다가는 거울을 쳐 다보곤 “이런 제길. 똑같네”라고 말하곤 했죠. (웃음) 뭐, 텍사스 같은 곳에 사는, 세르주에 대해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세르주를 알게 되는 건 좋은 일이긴 하죠. 영화를 보고 나서 세르주의 음반을 사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세르주와 함께한 60년대가 그립진 않으세요? 이러나저러나 당신과 세르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문화적으로 자유로웠던 60년대의 상징이잖아요. =안토니오니의 <욕망>에 출연한 건 당시 남편이었던 존 배리에게 나도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시위하고 싶어서였어요. 그리고 프랑스로 건너가서 세르주와 함께 산 건 영국과 내 부르주아 가족으로부터의 해방이었어요. 세르주는 나를 ‘초(超)도덕적’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맞아요. 하지만 40년이 흘렀어요. 그 시대는 나의 또 다른 생애였죠.

제인 버킨이 소유했던 그 ‘버킨백’.

-시간이 많이 없네요. 이걸 꼭 물어봐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러니까 버킨백 이야기예요. (웃음) 좋든 싫든 그 값비싼 백이 당신의 이름을 어떤 방식으로든 불멸화시킨 건 맞으니까요. =모두가 저에게 버킨백에 대해 물어보니 좀 지겹긴 해요. (웃음) 내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버킨백 하나를 얼마 전 이베이에 올려 16만달러 정도에 팔았어요. 그 돈은 일본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쓸 거예요. 사람들이 그 백을 원하는 걸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죠. 이건 그냥 가방일 뿐이라고! (웃음) 게다가 그 가방은 아주 무거워요. 최근에 제 팔에 문제가 좀 있어서 병원에 갔더니 무거운 가방은 들지 말라더군요. 이젠 그냥 비닐백을 들고 다닐까 싶어요.

-제가 당신의 버킨백을 사랑했던 이유는, 엄청나게 낡은 외양과 함께, 거기 붙여져 있던 아웅산 수치의 사진 때문이었어요. =지난 20년간 내 버킨백은 버마 민주화운동을 위한 광고판 역할을 했어요. 제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 거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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