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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의 혼연일체

클리프 마르티네즈 Cliff Martinez - <솔라리스>부터 <드라이브>까지

<드라이브>를 보고 난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은 카빈스키와 러브폭스가 함께한 <Nightcall>일지 모른다. 제목처럼 밤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그려낸 이 노래는 영상과 함께 듣는 이들을 홀리게 만든다. 극중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잠시 동안의 행복을 받아들일 때 등장하는 칼리지의 <A Real Hero>도 기억에 남을 노래다. 이 노래들은 모두 1980년대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의도에 꼭 맞춤한 노래다. 신스팝이라 불러도 되고, 요즘 칠웨이브란 이름으로 유행하고 있는 빈티지/아날로그 일렉트로닉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이 인상적인 노래들 가운데서 클리프 마르티네즈가 만든 스코어들은 묵묵히 자리하고 있다. 튀지 않으면서도 마치 영상과 한몸인 것처럼 어우러져 있는 것.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음악은 언제나 그랬다.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이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라는 거대한 밴드의 이름이다. 그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드럼 연주자로 첫 앨범 ≪The Red Hot Chili Peppers≫와 두 번째 앨범 ≪Freaky Styley≫에 참여하고 팀을 떠났다. 이는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채드 스미스라는 굉장한 ‘북재비’를 만날 수 있었고, 동시에 클리프 마르티네즈라는 훌륭한 영화음악가를 얻게 되었으니까.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떠난 클리프 마르티네즈는 훵크 록 밴드의 드럼 연주자에서 영화음악가라는 의외의 변신을 이루어낸다. 그 시작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첫 작품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였다.

첫 작품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에서부터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지향점은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철저하게 영상에 자신의 음악을 맞췄다. 독자적인 싱글보다는 영상과 어울릴 때 더 빛이 날 수 있는 곡 작업에 매진했다. 그래서 몇몇 스코어는 음악이 아니라 음향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2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이 있지만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드라이브>의 방식은 그렇게 닮아 있었다. 이후 계속해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과 짝을 이룬 클리프 마르티네즈는 <카프카> <트래픽> <솔라리스> 등 많은 영화의 음악 작업을 해냈다. 특히 <솔라리스>는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이 영화는 클리프 마르티네즈란 이름을 좀더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장르적으로 앰비언트의 어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더 몽환적이고 더 환각적인 방식의 인장을 새겨넣을 수 있었다.

<드라이브>로 돌아와, 앰비언트는 클리프 마르티네즈를 새로운 작가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해준 탁월한 수단이 되어주었다. ‘앰비언트’(ambient)의 뜻이 ‘주위의’ 혹은 ‘잔잔한’인 것을 떠올려보면 클리프 마르티네즈는 자신의 작법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를 택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영화에 등장하는 라이언 고슬링의 무표정한 얼굴만큼이나 친절하진 않지만 모든 중요한 장면에 스며들어 있다. ‘스며’들어 있다는 표현만큼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음악을 잘 설명해주는 낱말은 없을 것 같다. 라이언 고슬링과 캐리 멀리건이 서로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에도,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을 갖는 순간에도, 짧은 행복을 깨는 불운한 기운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의 음악은 언제나 스며들어 있었다. 그 스며듦으로 스코어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영상과 함께 흘러나올 때 스코어는 더 훌륭한 것이 된다. 반복해 말하지만,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음악은 언제나 그랬다.

<드라이브>

<드라이브>의 <Wrong Floor> 고작 90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소리는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온 자객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그 급박한 순간에 라이언 고슬링은 캐리 멀리건과 키스를 하고 순식간에 자객을 해치운다. 안개처럼 깔리는 앰비언트 인스트루멘털은 모두를 집중시키며 그 찰나와 같은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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