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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음악과 영화, 그 행복한 만남을 위하여
문석 2012-03-26

개인적으로 <건축학개론>은 최근 들어 가장 감성적인 영화였다. 보는 내내 완전몰입 상태였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자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나온 남자 기자들이 ‘이 기분 그대로 술 마시고 싶다’라고 했다는데 난 좀 더했다. 극장을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책맞게 울음을 빵 터뜨릴 뻔했으니까. 남자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는데, 그런 차원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니 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내 감정의 방아쇠를 당긴 건 영화음악이었다. 그러니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말이다. 1990년대 중반의 이제훈과 수지가 개포동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처음 흘러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저릿했다. 어떤 영상이 전개되도 좋으니 전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마도 그 장면 이후 나는 이제훈이 되어 영화 안으로 입장한 듯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제훈에게 ‘빙의’되는 건 말이 안된다. 영화 속 설정상 그는 96학번으로, 나와는 거의 10년 아래다. 이 영화를 본 후배 하나는 “드디어 X세대의 회고담을 담은 영화가 나왔다”라고 했는데 최루탄과 화염병 세대인 내가 그 정서에 가닿을 리 없는 일 아닌가. 내가 영화 속 이야기보다 정서적 울림을 받았던 쪽은 음악이었다. 1994년 발표된 이 노래를 통해 영화 속 주인공과 마음의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아니, 그 노래를 통해 나의 기억과 영화 속 그들의 회고가 이어졌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영화의 마지막 <기억의 습작> 전곡이 흘러나올 때 의자 속으로 파고들고 싶었던 건 그 노래가 환기시키는 개인적 기억들이 영화의 이야기와 뒤섞여 마음속에 거대한 파랑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란 영화처럼 첫사랑의 아련함보다는 ‘아, 이렇게까지 멀리 왔구나’라는 회한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만약 이 영화에 <기억의 습작>이 삽입되지 않았다면 과연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 질문은 <광식이 동생 광태>에 <세월이 가면>이 들어 있지 않았다면,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등병의 편지>가 나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란 물음과 비슷하다. 그 리스트에는 <포레스트 검프>나 <좋은 친구들> 같은 외화도 포함될 것이다. 어떤 시대를 표현하는 데 당시의 대중음악을 얹는 것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음악은 단지 재현을 넘어 보는 이의 기억을 게워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계에 대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무리한 요구와 문화부의 무책임한 개정안 처리를 보면서 잘못하다가는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써니> 성공 이후 복고조 영화를 고민하던 많은 제작자들이 고민에 빠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음악 저작권자의 권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지금의 일방적인 분위기는 영화계는 물론이고 음악계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 영화계와 음악계가 머리를 맞대고 영화음악의 부가수익을 늘리는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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