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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원작의 지나친 솔직함에 끌렸다"
이영진 백종헌 2012-05-04

<은교> 정지우 감독

정지우 감독은 2년 전부터 수염을 길렀다. “나이 들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마음에서 수염을 깎지 않고 기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박범신 작가의 소설 <은교>를 집어들었던 것도 비슷한 때다. 존경을 한몸에 받는 시인 이적요, 혼자 식은 밥을 물에 말아먹는 노인 이적요, 그럼에도 젊은 육체를 갖고 싶은 남자 이적요. 정지우 감독이 <해피엔드> <사랑니> <모던보이>에 이어 4번째 장편영화로 <은교>를 선택한 건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앞에 선 이적요의 오랜 침묵과 깊은 시름에 마음이 흔들려서였을 것이다.

-수염은 언제부터 길렀나. =2년 됐다. 처음엔 정말 지저분했는데, 이제는 바리캉 비슷한 도구도 사서 열심히 다듬고 있다.

-원작을 접한 건 언제였나. =<모던보이> 끝내고 한동안 멍하게 지냈다. 거의 진공상태였다. 그러다 <이끼> 시나리오를 썼고. 원작을 읽었던 건 지지난해 늦여름께였다. 영화로 만들기로 맘먹고 윤태호 만화가랑 천운영 소설가랑 알래스카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사이 투자가 결정됐다. <은교>는 그동안 만든 영화 중에서 개봉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 가장 짧다. 순식간에 후다닥, 후다닥. 이상하다, 이러면 안되는데, 싶었을 정도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막막함이 빈번하게 찾아와야 하는데, 이번엔 그런 게 없었다.

-원작의 어떤 부분에 가장 이끌렸나. =지나친 솔직함이었다. 은교에 대한 묘사보다 나르시시즘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이적요 시인의 자의식을 고스란히 기술한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점들이 나이 먹고 있다는 내 기분과 뭉친 거다.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소설 속 은교는 규정하기 어려운 청춘의 이미지, 그 자체다. 이와 달리 영화에선 은교의 비중을 늘렸고, 은교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역시 상이하다. 이 때문에 원작에선 두 남자의 대립 구도가 두드러지지만, 영화에선 좀더 복잡한 삼각 구도가 형성된다. =은교 캐릭터를 실제 인물로 세워내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두 남자의 눈에 비친 미성년 여자아이를 잘못 그려내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상황이 빚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은교를 실체감이 있는 인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삼각 구도는 선택이라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결론이었다. 물론 이런 점들을 한눈에 딱 보고 판단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오랜 헛손질 끝에 알게 된 거다.

-영화에서 서지우는 은교를 처음 봤을 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내 입장에선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삼각형의 꼭짓점들은 서로에게서 무엇을 원하고 또 얻어가려고 하는가. 통상적인 연애의 삼각관계는 정말 피하고 싶었다.

-이렇게 물어보자. 두 남자의 은교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이적요는 순정을 다한 사랑을 꿈꾸고 그래서 가슴 아픈 시련의 과정에 놓이는 인물이다. 반면 서지우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자기 스승에 대한 모사에 빠져 있다. 이적요의 글과 재능을 갖고 싶고 그래서 이적요의 사랑 안에 들어가서 그 사랑(의 대상)까지 갖고 싶은 것이다. 서지우가 은교를 이적요의 책상 위에 눕히는 것도 일종의 흉내다.

-원작의 에피소드와 대사들을 압축하고 재배열하는 데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히치콕 말이 맞다. 아주 대중적인 단편소설이 가장 영화화하기 좋다. 장편소설의 경우 텍스트의 함의가 광범위하다 보니 주요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면 남는 위험들이 정말 많다. 다만, <사랑니> 때 고생해서 그런가. 떼어내서 다시 붙이는 작업은 전보다 수월했다. 보다 단순한 구성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어느 정도 충족됐고.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박범신 작가의 반응이 궁금하다. =작품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잘못 만들면 노인 포르노 된다면서. (웃음)

-원작의 이적요는 은교에게서 첫사랑을 떠올린다. 반면 영화는 17살 소녀에게 느끼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랑니> 때 첫사랑의 제례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원도, 한도 없이 해봤고. 굳이 이들의 만남이 왜 운명적인가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데미지>의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쉬도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냥 한번 눈길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다만 은교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조심했다. 잘못하면 시작부터 지나친 구획이 되니까. 청소하는 장면의 의상도 바지로 교체해서 관객이 무심하게 넘기도록 했다.

-은교의 몸을 아름답게 묘사하되 동시에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기 위해서 촬영감독과 사전에 논의한 게 있다면. =그 대목은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김태경 촬영감독이 김고은씨에게 심하게 경도되어 있어서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웃음) 김고은씨를 은교 자리에 세우면서 내 역할은 끝난 셈이다. 김태경 촬영감독이 좋은 건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을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찍든 말든 배우는 알아서 움직인다. 배우들이 쫄 이유가 없는 거다.

-이적요가 은교의 손거울을 가져다주기 위해 절벽을 타는 장면은 코믹했다. 원작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신라시대 수로부인 이야기도 생각나고. =<헌화가> 말인가. 음악감독이 나중에 그 장면에 만들어 넣은 곡 제목도 <용사의 노래>였다. 이적요의 심정이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오는 용사의 마음이라는 거지. 우리도 두 남자의 상반된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우스웠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위험한 곳이라서 박(해일) 배우가 그 장면 찍을 때 등산하는 아저씨들이 놀라서 소리지르면서 뛰어오고 그랬다. 특수분장 때문에 땀을 흘리면 안되는 상황이라 배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박해일과 달리 두 배우는 함께 작업한 적이 없다. 게다가 김고은은 장편영화는 처음이다. =영화는 기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다른 성향의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한데 묶어야 하니까. 연희단 거리패나 극단 목화가 아니잖나. 이런 상황에선 감독이 일관된 요구를 하고 시간을 쓰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반 촬영이 굉장히 더뎠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버텨내느냐다. 배우 스스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근육이 생겨서 끝까지 갈 수 있다. 배우는 시간을 써야 하고, 난 재촉하지 않는 대신 그 시간을 책임져주고.

-테이크를 많이 간 장면은 일상적인 장면들이고, 정작 중요한 대목의 촬영은 굉장히 빨리 끝났다고 들었다. =일단 믿게 만들어야 하니까. 서지우가 이적요의 집에 처음 들어오는 장면은 정말 많이 찍었다. 텍스트상에선 서지우가 이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다 되어간다 정도로 끝나지만, 영화에서 그걸 믿게 해야 한다. 문은 어떻게 여나, 방 안에 들어와선 뭐부터 할까, 옷은 어떻게 둘까, 이건 계속 배우가 몸을 움직여보는 수밖에 없다. 이적요가 자동차 타이어 위에 올려놓은 키를 서지우가 쥐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찍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또 이러시네’ 그런 기분이 전달돼야 하는 거다. 또 다른 경우는 배우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다. 서지우가 <은교> 원고를 다시 가져가는 장면은 불과 3, 4초짜리지만 30번 넘게 테이크를 갔다. 이건 내가 원하는 틀이 있고, 그 안으로 배우가 들어오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런 장면을 찍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해야 지금 서지우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고 화가 났다 정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대영화에서 점점 연기의 내용들은 명료하게 문장화되지 않는다. 그러한 불명료함은 조금 지나서 혹은 큰 내러티브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모순적인 건 그렇게 되려면 실제 배우가 굉장히 정확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단어나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배우 스스로 드러내야 한다. 반면 마지막 장면을 비롯해 영화의 키(Key) 컷들은 다큐멘터리처럼 기회가 딱 한번 찾아온다는 마음으로 찍었다.

-두번의 섹스장면은 상반된 느낌으로 찍혀 있다. 첫 번째 섹스에서 이적요의 환상은 한껏 팽창되고, 두 번째 섹스에서는 환상이 무너진다. 특히 두 번째 섹스는 가학적인 느낌이 강하다. =길이부터 다르다. 청년 이적요와의 섹스는 더 보고 싶은 것을 일부러 빨리 끊어내려고 한 반면 서지우와의 섹스는 견디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으면 했다. 특히 두 번째 정사는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은교가 조금만 더 적극적이면 원래 그런 아이처럼 보일 테고, 서지우가 어느 수위를 넘어가면 이적요가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서 구해내야 하니까. 이적요는 절벽의 손거울도 주워온 양반 아닌가. (웃음)

-서지우와 은교를 지켜보던 이적요가 자리를 뜬 이후에도 두 남녀의 섹스장면을 지속해서 보여준다. =물리적인 시점이 해소됐기 때문에 논리의 이유로는 맞지 않는 컷이다. 하지만 눈과 귀를 막아도 계속 보이고 들리는 그런 이적요의 기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지우의 사고장면을 굉장히 길게 보여준 이유는 뭔가. =충돌의 스펙터클은 최소화하되 서지우가 벌받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도덕적인 의미의 징벌은 아니었고, 서지우가 어느 순간엔가 멈췄으면 좋았을 몇 가지 일들에 대한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은 많은 의미를 남긴다. 은교라는 인물이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고, 이적요가 자신의 글을 인정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가장 담고 싶었던 건 돌이킬 수 없다는 거다. 진실이 밝혀졌지만 세월은 갔고 그래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의 답답함이 가슴 아팠다. 아이고, 참. 나이 든다는 게 그런 기분 아닐까.

-영화를 보고 자꾸 <사랑니>를 떠올리게 된다. <사랑니>의 ‘꽃이 피었네’라는 대사와 <은교>의 ‘은교가 왔구나’ 혹은 ‘잘가라’라는 대사가 대구처럼 들리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사랑니>)가 이번엔 서지우의 입에서 “다시 태어나면 내 제자가 돼라”라고 나온다. 지금 와서 보면, <사랑니>는 유한을 인지하지 못하는 대화이고, <은교>는 유한을 절감한 혼잣말이다.

-명필름에서 준비하는 신작도 러브스토리인가. =두 남자와 한 여자가 격렬하게 붙는 그런 내용인데. 심재명 대표님과 차기작은 좀더 상의해볼 생각이다. 다른 아이템으로 한숨을 돌려볼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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