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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프로이트와 융을 만나다 <데인저러스 메소드>
송경원 2012-05-09

먹물깨나 들었다는 사람치고 프로이트와 융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정신분석학계의 뿌리이자 거목인 두 남자와 그들이 치료했던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흔히 위대한 인물들의 위용에 압도되어 쉽게 잊곤 하지만 그들 또한 사람이다. 존재감이 클수록 그림자 또한 짙은 법, 인간의 심리를 아무리 이론적으로 잘 설명했다고 한들 그들의 인생마저 완벽할 순 없다. 심지어 그들의 이론조차 완벽하지 않은 마당에. 이 영화는 프로이트와 융의 숨겨진 이야기와 그들이 감추고 싶었던 은밀한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위인들의 뒷이야기는 재미있다. 더구나 감독이 무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다. 폭력에 중독된 거칠고 끔찍한 세계를 다뤄왔던 크로넨버그의 첫 멜로드라마라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정신분석학계의 위인, 아니 신이나 다름없는 인물들의 속살을 파헤친다는 점에서 절로 기대가 인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칼 융(마이클 파스빈더) 에게 어느 날 사비나 슈필라인(키라 나이틀리)이란 여성이 찾아온다. 융은 어린 시절의 학대로 괴로워하는 그녀를 치료하고자 프로이트가 창시한 ‘토킹 큐어’(Talking cure)를 활용한 임상치료를 시도한다. 자신의 첫 임상환자인 사비나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융은 그 과정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급기야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사비나를 사랑하게 된 융과 그런 융에게 집착하며 의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사비나. 하지만 자신에게 헌신하는 아내를 배신할 수 없었던 융은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그녀를 거부하고 사비나는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을 떠난다. 한편 심리학을 과학으로 만들고 싶었던 프로이트(비고 모르텐슨)는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 접근을 주장하며 융과 사비나의 관계를 반대한다. 자신의 이론을 완성해주리라 믿었던 융이 점차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가자 이에 격노하며 융과 대립각을 세워나간다.

뼈대는 흔한 멜로드라마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뒤에 프로이트와 융의 이름이 붙는 순간 특별한 이야기로 변모한다. 영화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로이트와 스승을 거부하고 분석심리학의 대가로 거듭난 융, 그리고 융에게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아동정신 분석의로 거듭난 사비나 슈필라인의 관계를 통해 사랑, 위선, 허영, 질투 같은 인간 심리의 복잡다단한 면을 쏟아낸다. 사건의 동력은 아마추어 정신분석가가 환자에게 몰입하는 전이현상에서 출발하지만 기실 그로부터 출발한 프로이트와 융의 대립이 영화의 핵심이다.

신화나 전설이 아닌 인간 프로이트와 융을 만난다는 건 매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융의 비판을 듣고 격노 끝에 혼절하는 프로이트의 모습이나 융이 사비나의 치마를 붙잡고 늘어지는 장면은 이색적이고 신선하다. 하지만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빛나는 지점만큼 빛바랜 지점들이 도드라진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 있으며 드라마의 성패는 그 안에서 빚어질 긴장감의 상승과 유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크로넨버그식의 멜로드라마는 이를 안정감있게 성취하지 못한다. 프로이트와 융, 사비나 사이의 갈등은 생각보다 미흡하고 긴장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으며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라 변명하기엔 드라마로서 너무 헐겁고 앙상하다. 프로이트와 융을 아는 이라면 그마저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아는 만큼 더 즐거운 것이 아니라 딱 아는 만큼만 보이니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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