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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노장의 품격

알랭 레네 감독의 신작 <당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프랑스 현지 개봉

<당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올해로 아흔살을 맞은 알랭 레네의 새 영화 <당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가 지난 9월26일 프랑스에서 전국 개봉했다. 비록 그의 첫 장편이자 누벨바그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히로시마 내사랑>(1959), 더 가깝게는 260만 관객으로 그의 작품 중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던 <우리는 그 노래를 알았다>(1997)에 견줄 만한 성공은 아니지만, 레네의 신작은 개봉 첫주 만에 7만1849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과연 노장의 내공이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프랑스의 유명한 극작가 장 아누이의 <유리디스>와 <사랑하는 앙투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레네와 그의 시나리오 단골 파트너 로랑 에비에의 각색을 거친 이 작품은 원작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선보인다. 열두 배우들이 차례로 극작가 앙투안 다탁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를 받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전화를 받은 이들은 모두 과거에 다탁이 집필, 연출했던 연극 <유리디스>의 주•조연을 맡았던 배우들이다. 다탁은 그의 배우 친구들이 자신의 집에 모여서 한 젊은 극단이 자체적으로 완성한 <유리디스> 연극을 비디오로 관람한 뒤, 과연 이들에게 작품 공연권을 넘겨줘도 될지를 결정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다탁의 집에 모인 배우들은 고인이 남기고 간 공연 비디오를 보면서 젊은 극단의 연기나 연출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각자 과거에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서서히 빠져들고, 급기야 직접 (하지만 상상 속에서) 연극의 장면을 재상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두 젊은 배우(앙투안의 비디오 속)가 연기하는, 두 중년의 배우(안 코시니와 랑베르 윌슨)가 재생하는, 두 노년의 배우(사빈 아제마와 피에르 아르디티)가 회상하는 유리디스-오르페 커플을 자유롭게 오가며 연극 혹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입이 어떤 것인지를 장난스럽고도 진지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나이, 시대, 장르를 뛰어넘어 치명적 사랑을 갈구하는 이 세 커플들을 보면서 불편함과 혼란함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레네의 전작들과 다름없이 영화의 관객이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잊어버려야 하는 비현실적인 장치들을 전면에 내세워, 관객의 고전적 감정이입 과정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조잡한 무대 구조를 쏙 빼닮은 닫힌 공간(다탁의 저택 거실과 <유리디스> 연극 세트)에서만 진행되고,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운 영화 연기보다 과장된 연극 연기에 가깝다. 그러니 3D영화나 비디오 게임과 같은 매체로 하이퍼 사실주의를 경험하고 있는 현대의 관객에게 이런 초현실주의 효과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연 비디오를 개인적 회상을 통해 각자 다른 버전으로 재해석, 심지어 재현해버리는 배우들의 모습에 괴상한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레네는 영화가 단순히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시각적 공연물이 아니라, 매체가 제공하는 영상들은 그저 개개인의 경험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차적 요소일 뿐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가벼운 방식으로 전달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의 발칙한(?) 제목을 둘러싼 언론의 반응이다. <라 크라>의 아르노 슈워츠는 “알랭 레네는 제목으로 암시한 자신의 약속을 완벽히 지켰다”며 작품의 참신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프리미어>의 크리스토프 나르본은 이 작품이 “그간 레네가 꾸준히 실험해왔던 장르간의 결합(소설, 음악, 영화, 연극), 테마(망령, 죽음, 치명적 사랑), 스타일(부조리, 초현실주의)을 재탕, 혼합한 결과일 뿐”이라며, “당신들은 이미 모든 것을 보았다”고 비꼬았다. 물론 이 두 상반된 입장 중 어느 쪽을 취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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