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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 안에 관객과 함께 갇히자고 생각했다
이주현 사진 이동훈 2012-10-23

<남영동 1985> 감독 정지영

정지영 감독은 2년 연속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부러진 화살> 이후 채 1년도 안 돼 완성한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9월, 남영동 치안본부대공분실에 끌려가 20여일간 당한 고문의 참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지영 감독은 두시간 동안 관객을 고문실에 가둬둔다. 고문의 고통을 함께 체험하라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도, 영화에 출연한 배우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모두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화가 바로 <남영동 1985>다. 정지영 감독에게 왜 <남영동 1985>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물었다.

-<부러진 화살>의 흥행이 <남영동 1985>를 만드는 데 힘이 됐겠다. =종자돈이 됐다. <남영동 1985> 같은 영화엔 누가 선뜻 투자를 안 하니까.

-예전부터 고문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김근태 의원 얘기는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한 거고, 그 전에는 이근안 얘기를 하고 싶었다. 고문 경찰관 얘기를 다룬 <붉은방>이란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을 당시 장선우 감독이 영화화하겠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남산 안기부에서 영화사에 전화해 ‘그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느냐’고 한 거다. 그 한마디에 기획이 무산됐다. 모든 영화인들이 안타까워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그러다 머릿속으로 이근안 얘기를 픽션으로 만들어 보았다. 이근안이 어느 날 행방불명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고문 기술자란 걸 몰랐던 대학 초년생 이근안의 딸과 이근안한테 고문당한 고문 피해자의 친구가 각자 이근안을 찾아 떠나는 얘기다. 이걸 천운영 작가한테 얘기했더니 소설로 쓰겠다고 자기에게 달라더라. 천운영 작가가 소설로 쓰면 그걸 내가 다시 영화화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생강>이다. 그런데 내가 영화화하려는 방향과는 좀 달랐다. 그러던 중 김근태 의원이 돌아가셨고, 수기 <남영동>을 읽었다. 읽는 순간 ‘이거다,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결정했다.

-마지막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이 남영동 대공분실 안에서만 일어난다. =관객과 함께 갇히자고 생각했다. 고문 경찰관들의 집 이야기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남영동 1985>를 그리고자 할 때의 목적과는 다른 것 같았다. 시나리오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도 ‘과연 이렇게 고문을 묘사했을 때 관객들이 아파할까’ 였다.

-실제 고문 피해자들을 만나 취재를 했고, 그 인터뷰 영상을 영화의 마지막에 담았다. =엄청난 고통을 당하긴 했지만 사실 김근태 의원 같은 분은 보상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다. 인터뷰에도 나오지만 ‘살인범과는 같이 살아도 간첩이랑은 살 수 없다’면서 가족들이 외면한 사람도 있다. 그 많은 사연을 다 못 다룬 게 참 아쉽다.

-시나리오 작업도 빨리 진행된 것으로 안다. =일단 원작이 있고 고문 피해자들을 만나서 얻은 자료들이 있어서 시나리오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22일 동안의 고문을 묘사하면 되니까. 그보다는 어떻게 결말을 맺을 것인가가 큰 고민이었다. 용서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걸 구체적으로 그리진 않았다. 앞의 이야기가 희석될까봐.

-처음부터 박원상과 이경영을 김근태와 이근안을 모델로 한 김종태, 이두한 역에 캐스팅하려했나. =시나리오 쓸 때는 그런 생각 안 했다. 캐스팅 단계에서 과연 김종태 역을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첫째 <부러진 화살> 때와 마찬가지로 돈을 제대로 줄 수가 없다. 또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누워 있다가 앉아 있다가 끝나버린다. 캐릭터를 제대로 펼쳐 보일 시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내 제의에 응할까 생각해봤다. ‘아마 박원상은 거절하지 않을 걸’ 싶더라. (웃음) 악역인 이두한 역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이근안의 얼굴을 보면 두툼하니 평범한 사람처럼 생겼다. 나를 도와줄 사람에도 한계가 있잖나. 그래서 이경영을 적극적으로 꼬였다.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배우 박원상은 심리적으로도 엄청 난 고통을 감내했을 것 같다. =나도 찍으면서 이유 없이 힘들었다. 고문을 하고 고문당하는 걸 내가 보는 것도 결국엔 고문인 거더라.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후유증이 길었다. 그러니 박원상씨는 얼마나 힘들었겠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박원상씨가 원래 물 공포증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찍고 물 공포증이 사라졌다더라.

-<남영동 1985>를 만들기로 했을 때 김근태 의원의 가족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김근태 의원의 배우자인 인재근 의원을 찾아가면서 걱정이 많았다. 원작료를 줘야 하니까. “저희들 돈이 조금 부족하거든요” 그랬더니 인재근 의원의 첫마디가 “저 돈 많아요. 그런 데 신경 쓰지 마세요”였다. (웃음)

-이 영화를 대선 후보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세상이 무서워 간첩이 아니었다, 재심 청구해다오, 이런 말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문제들을 청산해야 민주화가 되는 거다. 설령 지금의 한국경제가 박정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 확신하는 사람이라도, 이 문제는 함께 아파하고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선 후보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거다.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 =<남영동 1985>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나는 대작이고, 하나는 소품이다. 둘 다 상업적인 영화는 못 되지만, 하여튼 사회적인 작품들이다. 대작 영화는 2백억 규모의 영화기 때문에 함부로 애기할 수가 없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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