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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함’이라는 감정 <나쁜 피>
윤혜지 2012-10-31

인선(윤주)은 엄마(설지윤)에게서 출생에 관한 진실을 듣게 된다. 너는 강간으로 인한 원치 않은 임신의 결과였다고 표독스럽게 고백하는 엄마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인선은 생부인 방준(임대일)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방준 전처의 친척으로 위장한 인선은 방준의 집에 머물게 되고, 인선과 방준은 각자 다른 목적으로 위험한 동거를 시작한다. 방준과 함께 살면서 인선은 방준의 인간적인 모습에 동요하고, 방준과 인선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다.

연극계에 오래 몸담았던 중견 배우 임대일은 ‘불쾌함’이라는 감정을 피부에 느낄 정도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주역이다. 핸드헬드로 촬영한 화면과 툭툭 끊어지는 편집은 영화에 거친 인상을 심지만 그렇게 이어붙은 화면들은 불안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로 기능한다. 공들인 듯한 미장센과 피아노 선율은 이 거친 작품에 묘한 음산함과 세련됨을 얹어주며 완급을 조절한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두 남자의 음담패설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불편한데,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이 불편하고 역한 느낌은 방준의 일상을 보여주며 정점을 찍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불쾌함’은 <나쁜 피>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주제다. 누군가에게는 쾌락을 안겨줬을 배설의 흔적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생지옥으로 몰아가는 극독이 된다. <나쁜 피>는 타협하지 않고 주제를 이어간다. 그러하기 때문에 영화는 파국을 맞고, 관객은 생각지도 못한 폭력적인 엔딩에 얼떨떨할 것이다. 서사는 종종 현실을 빠져나가고, 만듦새가 균질하지 않음에도 <나쁜 피>를 긍정하게 되는 이유는 감독의 강직한 주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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