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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메이션의 영광 <메모리즈>
송경원 2012-11-28

명작은 세월의 먼지에도 빛이 바라지 않는다. <메모리즈>가 재패니메이션의 정수이자 일본 애니메이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걸작이란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재패니메이션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이 독특하고 경이로운 상상력의 조합은 1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큰 놀라움과 생경함을 전한다. 3편의 옴니버스로 이루어진 <메모리즈>는 사이버펑크의 거장 오토모 가쓰히로의 지휘 아래 모리모토 고지가 스페이스 호러 오페라 <그녀의 추억>의 감독을, 오카무라 덴사이가 블랙코미디 <최취병기>를, 그리고 오토모 가쓰히로가 고풍스런 판타지 <대포도시>를 맡았다. 작화부터 장르, 분위기까지 판이하게 다른 세편의 작품은 <메모리즈>라는 틀 안에서 기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공개 당시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SF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각기 호러, 코미디 등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보여주었던 점도 신선했다. 무엇보다 독특한 작화와 실험적인 면모와 함께 장르적인 재미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당시 긍정적인 평가의 기반이 되었다. <그녀의 추억>의 아름다운 공포는 물론이거니와 <최취병기>의 재기발랄한 웃음, <대포도시>가 보여준 웅장한 세계관은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다. 어떤 잣대로 평가하든 완성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메모리즈>의 웅장한 세계가 오늘날도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듯하다. 이 작품은 이미 신화이자 전설이다. 다시 말해 <메모리즈>는 이미 과거에 속하는 영화다. 상상력보다는 고전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쪽이 되어버린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과거 재패니메이션의 영광에 대한 ‘메모리즈’가 되었다. 물론 충분히 아름다운 기억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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