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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관한 우리의 맨 얼굴 <나의 PS 파트너>
송경원 2012-12-05

‘평균의 함정’이란 말이 있다. 예를 들어 하루에 만원을 버는 사람 천명 중에 단 한명만 1억원을 벌어도 이들 수입의 평균은 10만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999명을 평균보다 못한 사람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무난하다’고 평하는 영화들에도 똑같은 오류가 숨어 있다. 연기는 빼어난데 연출에 약간 문제가 있을 때, 몇몇 장면은 기억에 남을 만큼 좋지만 나머지가 전반적으로 지루할 때, 혹은 내내 지루하다가 엔딩에서 훈훈한 마무리를 선보였을 때 우리는 흔히 ‘무난하다’는 말을 쓴다. 그러나 이는 연기, 연출을 비롯한 전반적인 장면들이 모두 고르게 평균을 유지하는 ‘무난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가 재미없는 영화에 시간낭비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자기 합리화에 가깝다면 후자는 눈에 띄게 빼어난 장면과 인상 깊은 대사는 없지만 적어도 보는 동안은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말하자면 모두가 10만원의 수입이 생기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균’이다. <나의 PS 파트너>는 참으로 무난한 영화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후자의 무난함이다.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며 음악에 매진하는 현승(지성) 에게 꿈은 너무 멀고 현실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그런 그를 견디지 못해 떠나간 전 여자친구에게 새 남자가 생겼다는 소식에 잠 못 이루던 현승. 어느 날 그에게 이상야릇한 전화가 걸려온다. 무관심한 남자친구의 관심을 돌리려 깜짝 이벤트로 폰섹스를 준비한 윤정(김아중)의 잘못 걸려온 전화를 무심코 받은 것. 5년째 남자친구만 바라보며 회사도 때려치우고 결혼을 꿈꾸는 윤정은 자신에게 소홀해진 남자친구 때문에 속이 상한다. 각자의 걱정과 아픔을 가진 두 남녀는 우연히 걸려온 전화를 계기로 계속 통화를 이어나가고,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기댄다.

<나의 PS 파트너>는 폰섹스로 이어진 인연이라는 발칙앙큼한 소재로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을 풀어가는 영화다. 당연히 폰섹스라는 19금의 자극적인 소재에 시선을 먼저 빼앗길 테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 이 영화에서 폰섹스라는 소재는 단지 장식에 불과하다. 그나마 폰섹스 장면도 초반에 잠깐 활용할 뿐 이후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활용하지 못한 것이라기보단 하지 않은 쪽에 가까워 보인다. 영화는 ‘PS 파트너’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두 남녀가 서로의 정체를 일찍 확인하고 이후엔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로 흘러가는데 <나의 PS 파트너>는 바로 이 ‘전형적’인 부분이 빛나는 영화다.

흔히 상투, 전형, 통속이란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달리 말하면 이는 그만큼 검증되고 보편적이며 공감이 가능한 이야기란 뜻이기도 하다. 잘 다듬어진 통속만큼 공감을 자아내는 것도 없고, 잘 만든 전형을 구축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의 PS 파트너>는 실로 상투적인 전개를 한치의 오차 없이 평균적으로 다듬어내어 만족스런 ‘무난함’을 선사하는 영화다.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상황과 현승과 윤정 두 남녀의 사연이 관객과 동화하며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은 이 영화가 로맨틱코미디의 장치와 공식을 그야말로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과 김아중 역시 대단한 연기적 야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배우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과 연기를 넘치지 않게 보여주고 영화는 이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넘치지 않는 연기,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연출과 전개가 딱 맞아 떨어질 때 발휘되는 평균의 힘이 여느 감동의 순간 이상의 강력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혹 영화를 보며 민망해진다면 그것은 폰섹스라는 소재 탓이 아니라 연애에 관한 우리의 맨 얼굴과 고민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망해서 더욱 공감가고 민망해도 계속 보고 싶은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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