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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영화 찍고 사표 썼다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2-12-11

<영화판> 허철 감독

한해 1천만 관객 영화 두편 배출, 중박영화의 속출, <피에타>의 베니스영화제 수상 소식. 승승장구하는 한국 영화계에 발칙하게도 찬물을 끼얹은 이가 있다. 미국에서 영화인을 배출하던 허철 감독은 5년 전 모교인 고려대학교로 돌아와 미디어학부 부교수로 재직하던 중 다양한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판>을 연출했다. 관객 1억명 시대의 한국 영화계, 그는 마냥 기뻐하기 이전에 우리 모두 지금의 모순을 냉정하게 돌아보자고 권유한다.

-한국 영화사를 관통하는 꽤 엄청난 스케일의 작업이다. =대학원 강의하면서 미국에서 만든 한국 영화사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적이 있다. 미국인에게 한국영화 역사가 오도되고 있더라. 학생들이 영화 실무자여서, 다들 우리 힘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고사하자 일주일 뒤 정지영 감독님께서 연락을 하셨다. ‘허 교수가 힘들면 정지영이 투입된다’는 조건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섭외 과정에서 또는 수위 조절에서 특별히 속을 썩인 이들도 있었을 것 같다. =스토리의 윤곽을 잡은 뒤에 이 이야기를 해줄 사람을 찾았다. 60~70%는 흔쾌히 오케이해줬다. 더러는 정 감독님의 강한 색깔 때문에 편집을 걱정하는 분도 있었다. (웃음) 세번이나 출연을 고사한 감독도 있었다. 인터뷰 한번의 시간만 짧게는 3시간 길게는 5시간 걸리는 강행군이었다. 김지미 선생님이 고생한다며 고기도 사주셨고, 많은 분들이 되레 격려해주셨다.

-정지영 감독은 인터뷰어로 참여했지만, 연출권에도 막강하게 관여했을 것 같다. =정 감독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허철이는 너무 예술적이야. 다큐멘터리에서 왜 연출을 하려고 하냐”고. 정 감독님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객관성을 믿는 반면, 나는 다큐멘터리도 극영화처럼 스토리텔링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만약 이 영화를 감독님이 편집했으면 아주 스트레이트한 이야기가 나왔을 거다.

-출연하는 인물들이 충무로 주요 제작자, 감독, 배우 같은 ‘내부인’이다. 미국 학계에서 지내다 온 사람이라는 점이 객관적으로 작용하는 한편으로 조심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한국에 왔고 이제 여기서 살아갈 거지만, 난 영화인 내부도 외부도 아닌 경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새로운 둥지에 갔는데 친구 집 방이 너무 지저분하다. 내 건 아니지만 ‘이거 치워도 되나요?’ 하고 영화계 터줏대감 정지영 감독님에게 하나하나 묻는 느낌이었다.

-촬영 기간이 적지 않았다. 편집에서 잘린 게 정작 완성된 영화에 수록된 부분보다 더 많았을 것 같다. =빨리 마무리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영화계 이슈들이 그치지 않더라. 곽지균 감독님 자살 사건이 난 뒤부터는 마음을 고쳐 좀 여유있게 찍자 싶더라. 그러다보니 촬영 분량만 200시간이 나왔다. 편집 기간이 제일 괴로웠다. 6개월 동안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수업 있을 때만 ‘교수놀이’하러 가고, 끝나자마자 ‘약속있습니다’ 하고 양재동 편집실로 달려왔다.

-전무했던 한국 영화계에 대한 영상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고생만큼 보람도 큰 작업이었다. =한국영화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은데, 영상 관련 학과도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영화 영상 기록이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이건 공적인 일이다. 영진위 같은 정부 기관이 나서야 한다. 사람들이 <영화판>을 보고 열받았으면 좋겠다. 왜 우리나라 영화계를 저렇게밖에 정리 못했어. 내가 제대로 다시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안건은 많은데 정작 한 이슈를 깊이 파고든다는 데서는 좀 부족하다. 더 전개할 아쉬운 부분들이 있을 텐데. =과거엔 UIP 직배 반대, 스크린쿼터 같은 문제를 영화인 스스로 모여 해결하려고 한 시절이 있었다. 자본이 지배하는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독재정권에서 영화가 탄압받던 시절보다 더 강하게 개입하고 있는데도 문제의식은 더 희박하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스탭들의 처우 개선이 가장 심각하다. 이 부분을 깊게 조명하는 게 일단은 첫 번째 과제다.

-벌써 다음 작품에 착수한 건가. =8월에 학교에 사표를 냈다. 다들 미쳤다고 하더라. (웃음) 아이오와와 샌프란시스코, 한국에서 16년 동안 교직생활만 해왔다. 처음 유학을 간 게 창작하고 싶어서였는데, 학교에만 있으니 현장과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렵더라. 미국에서 영화하는 학생들을 키우며 가진 경험을 토대로 한국의 문제를 짚어보고 싶다. 알고보면 내가 퍽 재밌고 유머가 많은 사람이라, 재밌는 영화가 나올 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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