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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Best of the Best(3)

위대한 귀환 올해의 감독 정지영

<부러진 화살>은 작품성과 흥행성, 양날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건 운이 좀 따랐기에 가능했던 일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흥행 면에서는 물론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부러진 화살>은 돌아온 정지영 감독의 화술을 주목하게 했다. 그 화술이란 젊고 새롭다는 인상은 적었지만 확실하고 명료해서 듬직했다. 정지영 감독은 한번 당긴 활시위를 멈추지 않았다. 내처 <남영동1985>를 만들었는데 영화적으로 판단한다면 <부러진 화살>보다 더 좋은 작품을 내놓았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귀환의 방식을 존중했고 그 성과를 인정했다. 올해의 감독으로 그를 뽑는 데 주저하지 않은 이유다.

“감독은 이렇게 귀환해야 한다. 그는 현재 영화계에 가장 절실하지만 가장 희박한 시선을 부활시켰다”(김지미), “지금 현재, 가장 활력 넘치는 독립영화감독”(김영진), “영화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과 뚝심을 영화로 보여주었다”(김종철), “정지영 감독의 화술이 갖는 명징한 힘이 강력하고도 정제된 영화를 가능케 했다고 본다”(김효선) 등의 지지가 잇따랐다.

정지영 감독은 선정 소감을 대신하여 <남영동1985>에 관한 소회를 들려주었다. “이런 자리에 뽑힐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 아니겠나! <부러진 화살>은 오랜만에 만든 작품이었는데 흥행이 잘됐고 그래서 그 기운으로 곧장 <남영동1985>를 하게 된 거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남영동1985>를 할 때가 <남부군>을 할 때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힘들었다. <남영동1985>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다. (웃음) 하지만 나로서는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데 대해 어떤 자부심 같은 것도 있다.” 물론이다. 그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많은 이들이 거기 동의하는 마음으로 그를 뽑았을 것이다. 정지영 감독의 요즘 관심사는 “분단문제”다. “아직은 생각에 그치는 거라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그는 우리 예상보다 더 빨리 더 뛰어난 방식으로 또다시 힘차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카리스마 끝판왕 올해의 남자배우 이병헌

2012년 한국 관객과 평단의 가장 열렬한 애정고백을 받은 대권주자는 다름 아닌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가짜 광해, 하선이었다. 그가 1천만 표심을 확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선정 소식에 “아, 정말 감사하다. 연말에 아주 훌륭한 선물이 될 것 같다”는 소감으로 말문을 연 배우 이병헌은, 하선의 뛰어난 “대변” 능력에 공을 돌렸다. “매화틀 말고 대변(代辯). (웃음)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속에 억눌러놨던 무언가에 대해 누군가가 대신 나서서 이야기해주는 것이 큰 판타지 중 하나인 것 같다. 그걸 하선이 만족시켜준 것 같다.”

물론 하선이 민심에 응답할 수 있었던 데는 하선과 광대 출신인 그를 가게무샤로 내세운 왕 광해, 1인2역을 신명나게 소화해낸 이병헌의 덕이 제일 컸다. 대범하지만 신경쇠약 직전의 왕과 천진하고도 인간미 넘치는 광대 사이를 그는 능숙하게 오가며 “두개의 전혀 다른 인물을 한 육체 안에 녹여내는 대단한 힘”(김지미)과 “그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무게감과 존재감”(김태훈)을 발산했다. 흡사 “넓게 편 멍석 위에 모처럼 올라선 스타의 리사이틀을 구경하는 쾌감”(김혜리)을 선사한 그의 연기에 평자들 또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에 그 자신도 “내 속에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마음껏 분출하며 원없이 놀아볼 수 있었기에 속시원한 작업으로 남을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현재 <지.아이.조2>의 홍보에 매진 중인 그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일본 개봉도 기다리고 있다. <레드2> 촬영도 끝낸 상태다. “지극히 미국적인 액션코미디 안에 내가 잘 녹아들었을지 물 위의 기름처럼 혼자 둥둥 떠다닐지 모르겠다. 기대 반 우려 반이다.” 하지만 어떤 우려도 결국에는 기대도 바꿔놓을 그임을 이제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열정의 소나타 올해의 여자배우 조민수

김기덕의 <피에타>가 아니라 조민수의 <피에타>라고 하는 편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피에타>는 조민수가 없었다면 주제 자체를 전달할 수 없는 영화다”(황진미)라는 평은 그녀가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피에타>를 통해 그간의 필모그래피를 압도할 만한 폭발력을 보여준 그녀는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배우로서 많이 노출되고 이름을 자주 불리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이 이름이 언제까지 불릴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 중이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이만한 내공의 배우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음을. “기존 여배우들이 보여주지 못한 압도적인 눈빛”(주성철)은 애초부터 그녀 안에 있었음을.

데뷔 이래 크고 작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지만 좀처럼 자신의 폭발력을 받쳐줄 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던 그녀는 올해 <피에타>를 통해 드디어 꽃을 피웠다. <피에타> 역시 “김기덕 영화의 무리수를 가장 무리없이 조율해낼 수 있는 감정의 진폭을 가진 배우”(이화정)였던 그녀를 통해 제대로 완성될 수 있었다.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여자배우라는 말을 듣자마자 “같은 직업군 안에 있는 분들이 잘했다는 말을 해줄 때 제일 행복하더라. 서로의 고충을 아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이해받은 기분이 든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어떤 게 최선일까를 고민 중이다. <피에타>에서는 몰입도가 정말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서도 그런 몰입도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그녀는 관객을 그리고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늘 해왔던 것처럼.

미친 존재감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 조정석

“400만명(<건축학개론>의 최종 관객수)을 납득시키다.”(장병원) 배우 조정석의 영화 데뷔전이 대중에게 얼마나 확실한 인상을 남겼는지, 저 한 문장만으로 납득이 간다. 이미 뮤지컬계에서 ‘미친 존재감’을 발휘해온 그의 스크린 나들이를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납뜩이’는 예상치 못했던 캐릭터다. 그만의 수줍은 유머감각으로 풀어낸, 얼치기 연애박사 납뜩이는 자못 시시껄렁한 자세로 첫사랑에 빠진 주인공에게 온갖 ‘썰’을 풀어놓으며 “어떡하지, 너?”를 연발하는데, 그 말이 결국에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살아 있네”와 더불어 올해 한국영화가 낳은 최고 유행어가 됐다. 여기에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카리스마 넘쳤던 은시경이나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에서 민중가요계의 조용필로 활약한 황영민까지 더한다면, 간만의 다재다능한 신인의 출현이다. 그러니 ‘어떡하지, 너?’는 이제 우리가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이에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연기에 매진할 생각이다. 역할에 상관없이 ‘조정석답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신스틸러’라는 말의 본래 뜻을 확인시켜준”(황진미) 배우 조정석, 그가 차기작 <관상>에서는 또 어떤 순간들을 훔쳐낼지 기다려진다.

순백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 김고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은교>가 나온 순간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는 이미 예약됐다. “<은교>의 매력 120% 충전”(남동철), “은교는 평면적인 캐릭터지만 그것을 살아 숨쉬게 만드는 것은 김고은이 뿜어내는 젊음과 매력”(김태훈)이라는 평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순백의 세상을 만난 것 같은 깨끗한 이미지”(김종철)의 그녀는 관객으로 하여금 “아주 오랜만에 무한하고 투명한 백지를 만난 기분”(남다은)을 느끼게 했고, “좀처럼 보기 힘든 ‘자연’을 간직한 마스크”(김지미)로 관객을 매료시켜나갔다. “<은교>라는 영화 한편으로 이렇게까지 많은 주목을 받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부담이 되진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좋은 연기를 할 뿐 더 잘해야지, 더 많은 칭찬을 받아야지 하는 욕심은 없다. 소같이 묵묵히 한 작품, 한 작품 해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은교’ 그 자체가 되었던 연기의 비결을 묻자 ‘절실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수줍음 많은 소녀지만 한편으론 이미 당차고 진지한 배우다.

상투성에서 벗어난 멋진 출구 올해의 신인 감독 이광국

좋은 이야기꾼이 반드시 좋은 감독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로맨스 조>에 관한 한 그 말은 틀림없이 유효하다. “이야기의 필요는 어디에 있고 우리는 왜 그 미로의 설계에 매달리는가, 라는 추상적 질문에 하나의 구체적 이야기로 대답하는 어려운 과제를 완수한 각본”(김혜리)을 바탕으로 “요즘 창작의 곤경에서 출발하는 많은 영화들이 빠지곤 하는 상투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멋진 출구를 보여줬기”(변성찬)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넘어 ‘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영화적 체험으로 끌어안은 결과다. “관계자 분들이 주신 상이라 더욱 영광”이라며 운을 뗀 그는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이번 데뷔작을 통해 시나리오가 끝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면서 몸으로 배우는 게 더 많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호기심 가는 이야기를 조촐하게나마 계속 찍어나가는 능동적인 감독이 되고 싶다”고 포부도 밝혔다.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출발해 미지의 숲을 발견해나가고 있는 그의 절실하고도 대담한 산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당신의 집념에 박수를 올해의 제작자 <26년> 최용배 청어람 대표

결국 만들어졌다. 그것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두 차례의 감독 교체와 제작 중단, 크라우드 펀딩을 포함한 시민모금 형식의 제작비 조달, 기획에서 완성까지 걸린 6년의 세월.”(황진미) <26년>의 제작과정은 어떤 의미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무산되리라던 우려를 떨치고 <26년>을 세상에 내놓은 집념에 박수를”(김지미),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면 안된다고 외치는 역사적 다짐의 결정체”(남다은)와 같이 <26년>을 향한 상찬 역시 대부분 제작과정의 역경과 제작의 정당성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오히려 이 점을 우려했다. “기쁘지만 안타깝다. 영화의 완성도로 선정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야말로 코미디 아닌가.” 그럼에도 힘겨운 제작과정을 거친 만큼 보람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시작은 할 수 있을까, 촬영이 제대로 될까, 개봉이나 할 수 있을까 싶어 매 순간이 두렵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영화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울컥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진 것 같다. 잘 살아야겠다고 매일 다짐하고 있다.”

낭만적 개념을 현실적 추억으로 올해의 시나리오 <건축학개론> 이용주

“빤한 이야기 같은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기억이 난다. 첫사랑한테 전화도 한번 걸어보고 싶고.”(이현경) <건축학개론>을 보고 누군들 그러지 않았을까. 하지만 기억의 지층을 어루만지는 각본이 나오기까지 이용주 감독도 각고의 시간을 바쳐야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0년 걸려서 썼다는 점을 기특하게 봐주신 것 같다”며 그는 겸손을 표했지만, “플롯은 ‘첫사랑’이라는 모호한 대전제뿐인데,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낭만적 개념을 손에 잡히게끔 전환한”(이지현) 그의 시나리오는 “사람들은 쉽고 편안하게 봤다지만 절대 쉽게 쓰여질 수 없는”(장병원) 것이었다. 영화제 초청과 DVD 출시 등 이런저런 후속 행사를 마무리짓고 이제야 겨우 숨고르기에 들어간 그는 “<불신지옥>이 입봉용 전략이었다면 <건축학개론>은 내 인생의 속죄의 영화였고, 이제야 진짜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기분으로, 내가 만들면서 함께 성숙할 수 있는 이야기가 어떤 게 있을까 찾는 중”이라고 전했다.

화면이 말을 걸다 올해의 촬영감독 <은교> 김태경

“사실 지금의 충무로에서 가장 잘 찍는 촬영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감독’임에 확실하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내가 신인감독이라면 촬영은 김태경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단순한 우스개가 아니다. ”(이지현) 이보다 큰 칭찬이 있을까. <은교>의 김태경 촬영감독의 올 한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함께 일하고 싶은 감독’일 것이다. 선정을 축하한다는 말에 “당황스럽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는 말로 인사를 건넨 김태경 촬영감독은 이내 “영화를 인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좋다. 자주 보는 잡지인데 <씨네21>에서 선정됐다니 더 기쁘다”며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이적요가 바라보는 은교의 매력이 무엇인지, 구구절절한 설명 필요없이 말해주는 화면의 아름다움”(이화정)이란 선정의 변을 들려주자 이내 해맑은 대답이 돌아온다. “이적요의 촬영은 진짜 어려웠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한계가 있는 부분이라서. 감독님의 요구를 따라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웃음)” 그의 대답을 듣고 나니 왜 그가 충무로에서 가장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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