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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조지 레이코프
김진혁(연출) 일러스트레이션 이선용(일러스트레이션) 2013-01-28

조지 레이코프를 처음 알게 된 건 2000년 중반이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가 쓴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의 책을 읽자마자 그의 열혈 팬이 됐다. 사실 그의 책은 대단히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 그는 인지언어심리학자답게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렸을 때부터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할까?’, ‘왜 내 마음은 이렇게 변화되는 걸까’에 대해 쓸데없이(?) 궁금해했었는데 그의 책은 바로 이러한 나의 궁금증을 후벼팠고, 때렸고, 동시에 어루만져줬다. 요약하자면 그동안 읽었던 그 어떤 심리학 책보다 충격적이었다.

이후 난 ‘프레임’이란 개념에 푹 빠져 지냈다. 당연히 많은 것들을 프레임이란 개념으로 보고자 했고, 그럴 때마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혹은 알고 있었지만 또렷하지 않았던 것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지난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예를 들면 왜 박근혜 후보가 야권 지지층(대다수 계몽주의적 이성과 논리의 힘을 신봉하는)이 보기에 다소 뻔하고 상투적인 ‘여성 대통령’이란 슬로건을 쓰는지에 대해 ‘프레임’적으로 접근해보는 것이다. 혹시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억압’의 트라우마(의 해소)와 연관된 ‘여성 권력자’ 프레임을 사용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이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박근혜 후보를 ‘억압받는 여성’으로서의 서사 속에서 이해하도록 해, 역시 억압받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자신과 좀더 ‘동일시’하고 ‘감정이입’하도록 하는 선거 전략은 아니었을까? 이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었다는 ‘희생자 프레임’과도 일맥상통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생자에서 ‘권력자’가 되는 영웅 서사와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이런 서사는 여성만이 아닌 억압받는 모든 이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프레임이 아닐까? 즉 ‘귀족’ 프레임을 해체하고 ‘서민’ 프레임으로 변환하는 효과가 있진 않았을까?

같은 시각으로 문재인 후보의 경우를 보면 ‘문재인’이라고 하는 개인에 대해 국민들이 자신을 ‘동일시’하고, ‘감정이입’을 할 만한 프레임이 마땅히 없었던 건 아닐까?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가치’로서 마음에 들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문재인’과 동일시하도록 하는 프레임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박근혜 후보의 경우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가치적 슬로건과 ‘준비된 여성 대통령’ 개인적 슬로건 두 가지가 존재했던 것에 반해 문 후보는 전자만 있고 후자가 없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문재인 후보의 ‘특전사’ 경력(심지어 강제 징집!)을 개인 슬로건쪽에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군인 서사’(책임과 의무, 그리고 희생)는 대한민국 남자, 그리고 아들을 둔 부모 대부분이 푹 빠져 있는 프레임이니 보다 많은 이들의 동일시와 감정이입을 적극적으로 끌어내지 않았을까? 혹시 이걸 잘 못 이해해서 ‘군인 서사’가 아닌 ‘대한민국 남자’(마초와 권위주의라는 서사를 동반한)로 초기에 프레이밍한 것은 실책이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군인 서사의 핵심인 ‘책임과 의무, 희생’이라는 프레임을 끌어내고, 이를 ‘책임지고 희생하는 대통령’과 같은 식으로 연결시켰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러면 참여정부의 과를 책임지기 위해 나왔다는 말도 좀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고 친노 논란도 더 용이하게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위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완전 아마추어인) 해석일 뿐이다. 무엇보다 ‘사후적 해석’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선 큰 의미가 없다. 다만 혹시라도 위와 같은 방식의 접근이 신선하게 느껴졌다면, 또한 그런 방식의 접근을 민주통합당(을 포함한 민주 진보 진영)이 새누리당 등의 수구보수 진영보다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조지 레이코프를 접해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선거 전략을 잘 짜기 위함이 아니라, 그 선거 전략에 ‘반응’하는 국민들과 그 국민들 중 한 사람인 당신과 나(의 뇌)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