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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이 남자를 고발합니다

참으로 볼만했습니다. 맥줏집이 떠나가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모습이 참으로 볼만했습니다. 안주로 나온 골뱅이를 다른 사람이 한두점 집어먹을까 말까 할 때 입안으로 마치 쓸어담듯이 집어넣더군요. 더욱 가관인 것은 그 태도였습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으스대는 태도. 그는 그날 오후 분명 ‘착한 일’을 했습니다.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이벤트에 무료로 참가했으니까요. 예전처럼 공중파에 고정 출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케이블TV와 라디오에 종종 얼굴을 내밀며 바빠죽겠다고 페이스북에 엄살과 자랑 반 섞인 포스팅을 하는 그에게 황금 같은 주말에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국 담배회사는 자선활동에 10만달러를 쓰고 ‘자선활동을 했다는 걸 홍보하는’ 데에 200만달러를 쓴다고 합니다. 200여 가지 독극물로 구성된 자신들의 제품을 잘 포장된 선의로 감추려는 것이지요. 맥줏집 구석 자리에서 벽을 기대앉은 채 자신이 얼마나 숭고한 행동을 했는지 일장연설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담배회사의 광고판을 떠올린 것은 비단 저뿐이었을까요?

그 위선적인 인물을 이 지면을 통해서 고발하고자 합니다. 그는 김남훈이라고 합니다. 일본 프로레슬링 DDT 익스트림급 14대 챔피언을 지냈고 월간지 <GEEK>을 비롯해 영화잡지 <씨네21>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작자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그의 얼굴을 봤어야 했습니다.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면서 자신이 행한 선행에 스스로 중독된 모습이라니요.

2013년 6월9일. 일산 국립암센터 지하 1층 대강당.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 재단쪽의 요청으로 소아암 환우인 승진이(14/가명)를 위한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음악과 레슬링을 좋아하는 승진이를 위한 프로레슬링과 공연. 링이 없는 상태에서 대강당 시멘트 바닥에 몇번을 떨어지다보니 몸에 탈이 좀 났었나 봅니다. 새벽녘에 파스라도 붙여야겠다 싶어서 눈을 떴지요. 알싸한 파스 냄새를 맡자 불현듯 저 자신이 참 못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재단쪽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우쭐댔습니다. 맥줏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더 우쭐댔습니다. 그게 부끄러웠습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약육강식을 거부하고 약자를 도울 줄 아는 생명체입니다. 즉, 그 행동은 인간이라는 증명입니다. 우쭐대면서 보냈던 반나절이 저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참 못난 놈입니다. 그래서 박수를 받아 마땅한 분들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멋진 시합에서 최선을 다한 김민호, 조경호 선수, 심판을 보기 위해서 서산에서 올라오신 이시카와 교수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던 강백수 밴드와 교통방송의 박철민 아나운서, 자원봉사를 해주신 최예원, 이연경, 윤희곤씨, 메이크어위시 재단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끝으로 “승진아, 널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널 응원하고 있어. 넌 이길 거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