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영하의 날씨
[영하의 날씨] 그곳에 그녀가 있었으므로
김영하(소설가) 일러스트레이션 김현영(일러스트레이션) 2013-07-01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미드나잇> 그리고 나의 비엔나, 나의 그리스

나는 1995년 2월에 제대를 했다. 바로 그 달에 한 계간지에 <거울에 대한 명상>이라는 단편을 발표하며 등단을 했다. 강변을 산책하던 남녀가 폐차 트렁크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절망적 섹스를 계속하다 끝내 거기서 죽는다는, 참으로 어둡고 암울하면서도 본격 19금인 그런 소설이었다(훗날 <주홍글씨>라는 그저 그런 상업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원고 청탁이 빗발칠 줄 알고 기다렸지만 몇달 동안 전혀 소식이 없었다. 먹고살려면 취직은 해야겠기에 모교의 한국어학당에 혹시 강사가 필요없냐고 문의를 했다가 올해는 벌써 마감했으니 내년에 다시 연락하라는 답변만 들었다.

동네에 ‘소수정예’를 표방하는 보습학원이 있어 찾아갔더니 원장이 흔쾌히 받아주면서 당장 강의를 들어가라고 했다. 남녀 고등학생 두명에게 한 시간 동안 영어를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심하게 똑똑했다. 나에 대한 원장의 기대가 너무 큰 것 아닌가 싶어 좀 부담스러웠다. 수업이 끝나자 원장이 그 두 학생을 데리고 원장실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나와서는 나에게 말했다.

“오늘 수고했어요. 다음 주부터 중학교 1학년 애들한테 영어를 좀 가르치세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심하게 똑똑’했던 그 두명의 학생들은 새 강사가 오면 들어가서 강사의 실력을 평가하는 애들로 근방의 명문고에서 전교 10등 안에 드는 우등생들이었다. ‘심하게 똑똑’한 아이들의 냉엄한 평가에 따라 나는 소수‘정예’와는 매우 거리가 먼 소수‘비정예’ 중1들의 우리에 던져졌다. 나도 모자라고 아이들도 모자라니, 나도 울고 아이들도 울고 그걸 본 원장도 울고, 울면서 강사 월급 깎고, 뭐 그런 나날이었다.

그래도 학원 생활 몇달에 어찌어찌 돈을 모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때는 아직 <비포 선라이즈>가 대한민국 청춘들 가슴에 불을 지르기 전인, 말하자면 ‘비포 <비포 선라이즈> 시대’였지만 그래도 유레일 패스를 끊어 한달간의 긴 여행을 떠나는 스물여덟의 청춘이 기대하는 바가 없을 수는 없었다. 영화나 소설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로맨틱한 사건들이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피렌체행 기차로 갈아타기 위해 비엔나역에 내리기 전까지 근 보름 동안 나는 낭만적 사랑은커녕 말 같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상태로 유럽의 도시들을 헤매다니다 거의 우울증 직전의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렇게 말다운 말에 심하게 굶주려 있던 나는 비엔나역 대합실에서 모국어가 들리자 허겁지겁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두 여성은 커다란 배낭을 안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사촌자매지간으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온 참이었다. 나는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이 자매님들을 붙들고 보름 동안 못다한 말들을 다 쏟아내기 시작했고 특히 언니가 참을성있게 내 폭풍수다를 들어주었다. 시간이 되자 그들이 부다페스트행 기차에 올랐고 나도 계획대로 피렌체로 향했다.

원래는 피렌체에서 3박을 하면서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피렌체에 아무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짐승남 다비드의 완벽한 몸매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결심을 했다.

부다페스트로 가자!

유창한 한국어를 조금 더 구사하고 싶어서였다, 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고, 실은 비엔나에서 만난 그 자매, 그중에서도 특히 언니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에이, 부다페스트가 무슨 시골 동네도 아니고 그래도 명색이 한 나라의 수도인데, 무작정 가서 도대체 어디서 그들을 찾아낸단 말인가, 같은 이성적인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다음날 아침, 밤 기차에서 내려 부다페스트역을 헤매고 있는 내 앞에 거짓말처럼 그 두 사촌자매가 나타났다. 기적 같은 일이 마침내 내 생에도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마침 파리행 기차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역에 들른 참이었다고 했다.

“숙소는 구하셨어요?”

아니라고 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묵는 민박집에 빈방이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헝가리 아줌마가 자기 방을 내주고는 자기는 친척집에 가서 자겠다며 나가버렸다. 더 바람직했던 것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언니는 남고, 동생만 그 다음날로 파리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둘은 바르셀로나에서 여권과 유레일 패스를 모두 잃어버리는 사고를 당했는데 언니쪽 부모는 흔쾌히 한달짜리 패스를 새로 끊어 보내준 반면, 동생네 부모는 속히 귀국시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단다. 아니, 이렇게 바람직할 수가!

다음날 동생이 파리행 기차를 타고 떠난 뒤, 남은 언니와 나는 같은 민박집에 머물며 부다페스트 관광을 계속했다. 낮에는 수영을 하고 밤에는 쏟아지는 잠과 싸우며 오페라를 보고 이름 모를 맥주를 함께 마셨다.

사흘 뒤, 우리는 함께 비엔나행 기차에 올랐다. 그녀는 이탈리아쪽으로 내려가 몇몇 도시를 둘러본 뒤 배를 타고 아테네로 향할 예정이었고, 나는 남부 프랑스쪽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기차가 비엔나에 다 다다랐을 무렵, 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어차피 혼자 하는 여행에 계획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그리스에 꼭 가보고 싶었노라고. 그녀는 내가 그러리라는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선선히 받아들였다. 아, 그래요? 그럼 같이 가요.

아시시와 나폴리를 거쳐 브린디시에 도착한 우리는 유레일 패스만 있으면 무료로 승선할 수 있는 페리를 잡아타고 아테네에 도착했다. 돌무더기 사이를 거닐고 해수욕을 하고 수블라키 등을 먹으며 나흘을 함께 보낸 뒤, 그녀는 이스탄불로 떠났고 나는 파리를 거쳐 먼저 귀국을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종로의 한 극장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있었다. 배경이 비엔나라니, 그것부터 신기했지만 우연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나는 부산의 한 극장에서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배경이 하필 그리스라니! 우연치고는 좀 심하다 싶었다. 게다가 나는 제시(에단 호크)와 이제는 직업까지 같아지지 않았는가 말이다.

예비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녀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 속의 그들은 어쨌든 다시 만나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지만 현실의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전혀 모르고 있다(셀린느와 달리 그녀는 내가 치른 그 많은 낭독회 등에 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다만 이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녀 역시 <비포 미드나잇>을 보았다면 비엔나에서 스쳤다가 부다페스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아테네까지 함께 여행한, 자기가 쓰고 있다는 이상한 소설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던 한 남자를 반드시 기억할 것이라고.

<비포 미드나잇>에서 이제 40대에 다다른 셀린느(줄리 델피)는 제시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이번에도 기차에서 뛰어내릴 건가요?” 17년 전에 비엔나에서 만난 사람과 같이 살고 있지 않은 나는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녀를 만나리라는 확신도 없이 무작정 부다페스트행 기차에 다시 오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행동은 스물여덟살에게나 어울린다. 그럼 40대의 남자에게는 무엇이 어울리나?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것들. 극장의 어둠 속에 몸을 파묻고 영화 보기, 달콤쌉싸름한 회고담 늘어놓기, 그러다 혼자 괜히 쓸쓸한 기분에 젖어 맥주 마시기, 그리고 글쓰기.

20대는 몸으로, 40대는 머리로 산다. 살아보니 둘 다 나름대로 좋았다. 이제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찍을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내가 하마터면 살았을 수도 있었을 또 다른 삶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