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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멜로의 왕과 미스터리의 대가

‘스튜디오 다이에 특집’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와카오 아야코 방한

<타오름>

‘스튜디오 다이에 특집’이 열린다. 영상자료원에 위치한 시네마테크 KOFA에서 7월2일부터 21일까지 다이에 영화사에서 제작된 27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관객과의 대화 등 부대행사가 마련된다(공동주최 일본국제교류기금). 이렇게 특정 영화사의 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로 흥미로운 기획이다. 다이에 영화사가 어떤 곳인지 간단히 살펴보면, 1940년대 일본영화 제작사들은 정부 주도로 통합/정리되는데 그때 살아남은 3대 회사 중 하나다. 쇼치쿠(松竹), 도호(東寶), 다이에(大英)가 그 주인공이다.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오즈 야스지로는 쇼치쿠, 구로사와 아키라는 도호의 대표적 감독이다. 다이에는 쇼치쿠와 도호에 비해 대중적인 성격을 지향하는 한편, 외국으로 일찍 눈을 돌려 해외 영화제 출품에 적극적이었다.

다이에를 대표하는 이치카와 곤(1915∼2008)과 마스무라 야스조(1924∼86) 감독의 작품들이 이번 특집에서 상영된다. 상영영화의 제작 시기는 1956년에서 1971년까지로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대표작들이 망라되었고, 이치카와 곤 감독의 전반기 수작들이 선정되었다. 1950∼60년대는 일본영화의 전성기로 무수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작품을 연출한 이치카와 곤,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을 한 가지 색깔로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치카와 곤은 독특한 스타일로 영상화한 미스터리 장르에, 마스무라 야스조는 인간의 본능적인 애욕을 탐구하는 멜로드라마에 능통하다고 할 수 있다.

이치카와 곤, 농밀하고 전방위적인

이치카와 곤 감독은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영화화한 <이누가미 일족>(1976), <악마의 공놀이 노래>(1977) 등으로 유명하다. 일본 국민탐정 긴다이치 고스케(김전일)가 활약하는 이들 작품은 소설도 흡인력이 강하지만 영화도 일품이다. 이번 특별전에서 이들 작품은 상영되지 않지만, 이치카와 곤의 영화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전기 작품들을 모아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치카와 곤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누나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그림을 좋아하는 소년은, 어린 시절 당대를 풍미했던 슬랩스틱코미디보다는 칼바람 부는 찬바라영화를 즐겨봤다.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은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였다.

이치카와 곤 감독의 일생과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작품들 외에 이와이 지 감독의 다큐 <이치카와 곤 스토리>(2008)를 추천한다. 누구보다 서정적인 영화를 만든 이와이 지 감독이 이치카와 곤을 사숙하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예술의 영향 관계는 뜻밖의 통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놀랄 일은 아니다. 이와이 감독은 이치카와 감독에 대해 “어딘가 익살스럽고 어딘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평하고, 그의 작품은 “농밀하고 전방위적이며 경계가 없는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이치카와 감독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물론 이와이 감독 자신의 문학적 코멘트도 돋보이는 영화다.

이치카와 곤 감독을 말하기 위해 꼭 언급할 여성이 있는데, 각본가 와다 나토다. 다이에 영화사에서 통역 일을 하던 와다 나토는 이치카와 감독을 만나 결혼한다. 지적이며 아름다운 그녀는 평생 이치카와 감독의 명실상부한 동반자였다. 그녀는 이치카와 감독 영화의 주요 작품의 각본을 썼다. 미스터리영화의 대가로 알려진 이치카와 곤 감독이지만 사실 그는 문학작품을 다수 영화로 만들었다. 미시마 유키오, 다니자키 준이치 등의 원작을 영화화하는 데는 와다 나토의 공이 컸다. 미시마 유키오 단편 <금각사>는 이치카와 감독에 의해 <타오름>(1958)이란 작품으로 만들어졌는데, 탐미주의를 형상화한 원작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원작과 다르게 과감하게 각색했다.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급급한 게 아니라 자신의 영상미를 구현할 각본을 만든 것이다. 편집, 음악에서 감독의 장기인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배어 있는 작품이다. 외유내강 여성과 타고난 영화인 남성의 만남으로 두 사람의 합작품은 개성있는 색깔을 갖게 된다.

패전의 기운이 강하게 드리운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필리핀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상과 극한의 인간을 묘사한 <들불>, 무려 9명의 연인을 둔 남편에게 복수하는 아내를 그린 <검은 10인의 여자>, 두살짜리 아기의 시점을 택한 <나는 두 살> 등 11편의 영화가 이번에 상영된다. 젊은 시절 이치카와 곤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 기노시타 게이스케, 고바야시 마사키와 함께 4일의 기사회를 결성하고 공동연출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는 무산되었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걸출한 사람들의 연합이 쉽지 않다는 것을 거듭 일깨워주는 에피소드지만 한편으로는 이치카와 감독이 가진 천진한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이치카와 감독은 80대까지 현역으로 활약한 행복한 감독이다.

<세이사쿠의 아내>

마스무라 야스조의 페르소나 와카오 아야코

도쿄대학 법학과 출신의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은 1957년 <입맞춤>으로 데뷔했다. 당대 젊은이들의 풍속을 생생하게 반영한 이 영화는 구치소 면회실에서 만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1950년대 일본사회의 분위기와 청춘남녀의 애정 심리가 경쾌하게 표현된 영화다.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본령은 멜로드라마에 있으며 그의 작품세계는 여배우 와카오 아야코를 통해 정점에 이른다. 이번 특별전을 위해 내한하는 와카오 아야코(80)는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에 의해 진정한 배우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녀는 <아내는 고백한다>(1961), <세이사쿠의 아내>(1965), <만지>(1964), <문신>(1966) 등 20편의 마스무라 감독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1962년부터 3년 연속 <키네마준보> 블루리본상을 수상했다.

치명적인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의 걸작 <세이사쿠의 아내>에서 와카오 아야코가 없었다면 관객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름답지만 나른한 허무를 등에 지고 있으며 결핍된 애정을 얻기 위해 주저하지 않는 매혹적인 캐릭터를 와카오 아야코는 완벽하게 현현한다. 돈에 팔려갔다 돌아온 불우한 여자는 진정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지만 세상은 이들을 축복하지 않는다. 모범 군인으로 마을의 존경을 받던 남자는 여자로 인해 명성을 잃게 되고 여자는 거듭 징집당하는 남편을 막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강렬한 스토리에 파괴적인 사랑과 맹목적 전제주의를 성찰하는 깊이있는 주제의식을 담아냈다.

1970년대 마스무라 야스조의 대표작 <눈먼 짐승>(1969)은 놀라운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남녀관계를 시원적으로 고찰한 작품이다. 에도가와 란포 원작인 이 영화는 누드모델인 여주인공이 맹인 조각가에게 납치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상을 볼 수 없는 그는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을 발달시키는데 단연 으뜸은 촉각이다.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를 촉각으로 느끼기 위해 안마사가 된 그는 꿈꾸던 여성을 만나게 되자 그녀를 모델로 한 조각품을 만들려 한다. 납치 뒤 탈출 기회만 엿보던 여주인공은 점차 자신도 모를 감정에 빠지게 된다. 엄마와 아들, 성적 욕망의 변증법을 명쾌하게 풀어낸 이 영화는 정신분석학의 영화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감각 세계의 기묘한 법칙, 남자아이가 어른이 되는 원리, 신체 기관의 분절에 대한 때이른 통찰 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마스무라 감독의 멜로드라마는 파격적인 설정 자체가 문제적이다. 딸의 약혼자와 복잡한 관계에 휘말리는 엄마, 남편의 친구와 묘한 기류를 형성하는 아내, 당시로선 드문 여성동성애자 등 마스무라의 여성들은 위태롭고 위험하다. 이런 여성들을 화면으로 구현하는 데 와카오 아야코는 꼭 필요하다. 오즈 야스지로에게 하라 세스코, 나루세 미키오에게 다카미네 히데코가 있다면 마스무라 야스조에게 와카오 아야코가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마스무라 야스조와 와카오 아야코가 콤비를 이룬 첫 작품 <명랑소녀>(1957)부터 원숙하고 농염한 전성기 작품 <만지>까지 그녀의 변모를 볼 수 있는 다수의 작품이 선보인다. 또한 와카오 아야코와 관객과의 대화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상영되는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자면, 초기 대표작 <거인과 완구>(1958)는 현대 소비사회를 풍자한 희극으로 개봉 당시 흥행은 부진하였지만 시대를 앞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흔치 않은 산악영화이기도 한 <빙벽>(1958)은 미모의 유부녀와 그녀를 흠모하는 여러 남성이 등장하는 파격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도쿄대 법대 동기인 미시마 유키오가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실없는 놈>(1960), 유현목 감독에 의해 국내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던 <아내는 고백한다>, 다이에에서 마지막으로 연출한 <불장난>(1971)까지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전모를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특별전에는 국내 최초로 스크린 상영되는 8편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이치카와 곤 감독의 <처형의 방>(1956), <만원전차>(1957), <남동생>(1960), <파계>(1962)와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명랑소녀>, <난류>(1957), <빙벽>(1958), <불장난>(1971)이 그것이다. 이번 특별전에는 영화 상영 뒤 김홍준, 김태용 감독이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도 준비된다. 영화는 모두 무료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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