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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더위도 까무러칠 장르 쾌감

놓치면 안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환상 티켓 11장

<마약전쟁>

더럽거나, 귀엽거나, 진지하거나. 잔혹하거나, 아찔하거나, 배꼽 빠지거나. 여름을 닮은 강렬한 영화들이 장마철의 극장에서 상영 대기 중이다.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7월18일부터 28일까지 부천시 일대에서 열린다. 장르영화 거장들의 신작부터 앞으로 국제영화제에서 자주 이름을 접하게 될 재기 넘치는 신진 감독의 작품까지, 부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11편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카운트다운> 나타우트 푼프리야 / 타이 / 2012년 / 90분 / 부천 초이스: 장편 세명의 타이 젊은이가 뉴욕의 아파트에서 나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이들은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 파티를 위해 ‘지저스’(Jeusu)라는 마약상을 불러들인다. 유쾌하게 진행되던 드럭 파티는 마약상 지저스의 돌변으로 인해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고 그 정점에서 새해의 카운트다운은 운명을 결정지을 듯 끔찍하게 울려 퍼진다. 영화 <카운트다운>은 미스터리한 지저스와 세 청춘이라는 한정된 캐릭터와 제한된 아파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지루할 틈 없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과연 이들은 행복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핼리> 세바스찬 호프만 / 맥시코, 네덜란드 / 2013년 / 83분 / 부천 초이스: 장편 영화의 제목은 75년 주기로 돌아오는 핼리혜성에서 따왔다. 산 채로 부패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알베르토는 헬스클럽 경비원이다. 집 안 장식물을 닦는 일과 염하듯 자신의 신체를 닦고 소독하는 일이 매일처럼 반복된다. 맨살에서 구더기를 뽑아낼 정도로 부패가 진행되고 있지만 영화 속 언급처럼 ‘그는 여전히 존재한다’. 헬스클럽 사장, 시체안치소 관리인 등 육체를 다루는 사람들을 만나며, 알베르토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쓸쓸하고 황폐하게 겨우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록 지금 삶이 암흑 속을 관통하듯 우울할지라도 저 멀고 아득한 우주를 돌아 혜성은 돌아온다. 언젠가 우리가 모두 사라진다 해도. 더딘 진행, 관조적 롱테이크는 관객으로 하여금 알베르토의 실존적 사유에 동참케 한다. <핼리>는 드물게 만나는 서늘한 신체호러영화이자 성찰적 실험영화다.

<엉덩이요정 마일로> 제이콥 본 / 미국 / 2013년 / 85분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던컨에겐 되는 일이 별로 없다. 가족들은 골칫덩어리뿐이고 야비한 직장 상사는 그를 화장실로 대기 발령시킨다. 온갖 스트레스로 복통을 느끼던 그는 참다못해 심리치료사의 최면을 통해 자신의 장 속에 기이한 존재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통제되지 않는 어두운 부분을 반영하는 작은 악마 마일로는 타인들에게는 폭력적이지만 던컨에겐 더없이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스트레스로 인해 더 포악해지며 복통과 배변의 고통을 안긴다는 점에서 어쩌면 마일로는 변비의 요정일지도. 이 영화는 끔찍한 마일로를 통해 노 스트레스를 외치는 깜찍한 호러영화다. 영화 <그렘린>의 기즈모를 연상시키는 마일로는 대장에 살고 항문으로 출입하는 구린 존재지만, 검은 동공을 반짝이며 쳐다볼 때엔 마음을 흠뻑 빼앗기게 될 것이다.

<짚의 방패>

<중학생 마루야마> 구도 간쿠로 / 일본 / 2013년 / 119분 / 비전 익스프레스 엉뚱한 상상을 즐기는 에로 소년 마루야마는 중학생이다. 평범한 직장인 아빠, 한국 드라마 배우에 빠져 사는 엄마, 남자친구 없는 10살의 여동생, 그리고 같은 아파트 이웃 주민들 속에서 마루야마는 그저 조용한 중학생일 뿐. 소년은 자신의 신체를 유연하게 단련시켜 음란한 소망을 만족시키기를 은밀히 기원한다. 고된 훈련 중 몸에 전기가 통할 때마다 마루야마는 섹시한 환상 속에 빠져드는 한편 자신의 위층에 사는 미스터리한 남자가 살인마라는 망상에 빠져 있다. 영화 <중학생 마루야마>에는 일본 특유의 황당한 일상 코믹의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감독인 구도 간쿠로는 극작가이자 배우, 각본가, 가수이기도 한 재간꾼이다. 구사나기 쓰요시와 양익준의 허를 찌르는 캐스팅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부드럽게 매달아주세요> 케이트 셴튼 / 영국 / 2012년 / 70분 / 금지구역 제목이 주는 달콤한 연상과 달리 영화적 상상력과 금기의 한계치를 보여주는 ‘금지구역’ 섹션에 소개되었다. <부드럽게 매달아주세요>는 갈고리에 실제 인간의 신체를 매다는 보디 서스펜션을 즐기는 사람들을 직접 취재한 다큐멘터리다. 피어싱과 타투 등 고통을 통한 신체 표현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주로 이러한 취미 생활을 즐긴다. 처음엔 이들의 취미가 단지 신체를 푸줏간의 고깃덩어리와 같은 처지로 만드는 그로테스크하고 가학적인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들이 경험하는 해방과 자유의 경험을 통해 보디 서스펜션이 일종의 정서적인 의례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신체 관통의 고통을 매개로 지상을 초월하는 의례는 기독교적 수난(passion)과 책형(crucifixion)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더 마스터즈_두기봉 vs 미이케 다카시

<블라인드 디텍티브>(2013), <마약전쟁>(2012) 아시아 장르영화의 거장으로서 초대된 두기봉 감독은 최근에 만든 범죄스릴러영화를 들고 부천을 찾는다. <블라인드 디텍티브>는 전직 형사였으나 실명한 뒤 사립탐정으로 활약하는 총(유덕화)이 유능한 여형사 텅과 함께 과거의 미해결 사건을 헤쳐나가는 미스터리영화다. 이들은 한 소녀의 과거 실종사건을 재구성해 나가는데,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최종 진실은 결말에 가서야 드러난다. 맹인 탐정이 주인공인 만큼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음식 재미가 쏠쏠하다. 탐정과 여형사의 티격태격 다툼에는 스크루볼 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됐다. 하드보일드 범죄영화 <마약전쟁>에서는 목숨이 위험한 마약조직의 중간보스를 활용한 마약전담 형사들의 작전이 지적으로 진행된다. 두기봉의 액션 연출, 형사와 마약 중간보스로 활약한 손홍뢰, 고천락의 연기를 믿고 볼만한 영화다.

<짚의 방패>(2013), <악의 교전>(2012) 지속적으로 해마다 2∼3편의 영화를 연출하는 미이케 다카시는 V시네마 시절부터 빠르고 왕성한 다작으로 유명하다. <짚의 방패>는 기우치 가즈히로의, <악의 교전>은 기시 유스케의 소설을 각각 원작으로 삼았다. <짚의 방패>는 어린 소녀를 강간 살해한 파렴치범을 48시간 내에 도쿄로 이송해야 하는 특수경찰의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분투를 담았다. <악의 교전>은 미이케 특유의 피칠갑 호러영화로 절대악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를 다루고 있는데 <짚의 방패>는 이를 바라보는 형사 메카리(오사와 다카오)의 시점에서 전개되고, <악의 교전>은 사이코패스 교사 하스미(이토 히데아키)를 주인공으로 하여 전개된다. 자연스레 후자가 훨씬 잔혹하나 드라마의 긴장감은 최근작인 <짚의 방패>가 더 높은 듯하다.

<맨보그>

특별전_인간과 로봇의 경계에서

<컴퓨터 체스> 앤드루 부잘스키 / 미국 / 2013년 / 92분 18세기에 체스 두는 자동인형엔 실제 사람이 숨어서 조작을 했다. 그렇다면 체스 두는 컴퓨터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혼 비슷한 것? 영화는 한 호텔에서 벌어진 컴퓨터 체스 컨퍼런스를 배경으로 삼았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와 포터블 무비 카메라가 등장하던 1970년대 중반이 배경이다.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나 나옴직한 초근시 뿔테의 공대 모범생들은 학회와 경연대회를 통해 실력을 발휘하고 의문을 심화한다. 코믹 터치를 가미한 복고풍 SF영화 속에, 문득 묘하게 서정적이고 성찰적인 질문들이 깔려 있어 호흡을 멈추게 된다. 비 오는 날, 빗물로 인한 오류로 생긴 컴퓨터가 보이는 정서적 반응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고전 소니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화면에 알테어와 초기 애플컴퓨터가 등장하는 등 이공대 클래식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보그> 스티븐 코스탄스키 / 캐나다 / 2011년 / 75분 1980년대 성장한 비디오키드의 영화임이 분명한, 터무니없이 더럽고 웃긴 영화다. 감독 스티븐 코스탄스키는 레트로 사이버펑크물 <맨보그>를 비디오영화처럼 만들어냈다. 드라큘론에게 목숨을 잃은 군인 주인공이 기계인간 ‘맨보그’로 부활한다. 그는 넘버원맨, 저스티스, 미나와 팀을 이뤄 나치 뱀파이어들과 싸운다. <블레이드 러너> <비디오드롬>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싼티나는 영상에 촌스러운 더빙, 광고를 표방한 쿠키영상까지 구색을 맞췄다. 요 근래 수공예적 SF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위 ‘비디오키즈SF’가 하나의 장르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관심있다면 올해 부천영화제에 소개되는 <V/H/S> 2편이나 <리와인드 디스: 비디오테잎의 역습>을 함께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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