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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자유로운 비행 <이고르와 학의 여행>

조류학자 아빠와 함께 러시아 습지에서 학을 관찰하던 이고르(이타이 슈체르베크)는 갓 태어난 새끼 학에게 ‘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고르에겐 평생 한짝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다정한 학의 모습이 부모가 이혼한 자신의 가족 모습과 대조되어 보인다. 이고르는 학과 함께 이동하는 아빠와 좀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섭섭하다. 아빠는 이스라엘을 경유해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철새들을 취재해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리고, 이고르는 이를 통해 칼의 이동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엄마와 함께 낯선 이스라엘로 이민가게 된 이고르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인터넷도 잘 안되는 곳에서 적응의 문제를 겪는다. 외롭고 쓸쓸할 때 상상 속에서 이고르를 위로해주는 것은 저 먼 곳으로 꿋꿋이 날아가는 새떼들의 자유로운 비행이다.

러시아 습지에서 여름을 보내다 흑해를 건너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 학은 무리를 지어 머나먼 길을 여행한다. 폭풍으로 부모를 잃고 약한 몸으로 10여 시간에 달하는 비행을 통해 흑해를 날아가야 하는 어린 학 칼과, 낯선 환경과 낯선 언어 속에서 부모의 결별을 인정해야 하는 어린 이고르의 적응의 문제는 영화에서 같은 궤로 움직인다. 제목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영화 <이고르와 학의 여행>은 꼬마와 학의 직접적인 여행을 다룬 영화는 아니다. 이고르와 그의 친구들이 홀로 험한 여행을 하는 어린 학 칼을 응원하고 그들이 사는 이스라엘의 작은 도래지로 초대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영화다. 이고르가 어린 학의 여행을 응원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아이의 성장과 가족애 등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정서로 확장되어 간다.

감독 예프게니 루만은 벨라루스 출신으로, 이고르처럼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어린 시절 학을 보며 성장했던 본인의 경험을 반영하여 첫 번째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엔 손그림 같은 애니메이션이 삽입되어 어리고 쓸쓸한 이고르의 내면을 따뜻하게 연출해낸다. 양념 없는 스토리에 소박한 아이들의 동심과 이를 인정해주는 어른들의 진심이 엮였다. 러시아의 늪지대, 이스라엘의 철새 도래지 등을 배경으로 우아하고 자유로운 새떼들의 비행을 보는 것도 즐겁다. 캐럴 발라드 감독의 <아름다운 비행>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고르와 학의 여행>은 여행을 통한 정서의 확장보다는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아이의 적응담에 방점을 찍었다. 어린 꼬마 이고르의 내면에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입시키는 스토리에 탁 트인 자연풍광이 인상적이다. 무더운 여름에 보기에 청량하고 담백한 무공해 가족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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