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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판 <건축학개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자크 타티의 공간감과 우디 앨런의 로맨틱함이 뒤섞인 도시 청춘 영화라 해도 좋겠다. 혹은 세련되고 모던하며 지적인 아르헨티나판 <건축학개론>이라 해도 좋겠다. 제목인 도시명이 연상시키는 바와 달리 이 영화에 탱고는 없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경제적 불균질성, 미적이고도 윤리적인 불균형성이 뒤얽힌 대도시다. 전망과 채광을 포기한 채 좁은 원룸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세입자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남자 마틴(하비에르 드롤라스)은 11평 원룸에 사는 웹디자이너다. 공포증과 반복되는 공황발작으로 몇년째 거의 은둔생활 중이다. 한편 여자 마리아나(피욜라 로페즈 드 아야라)는 맞은편 건물에 사는 건축가다. 4년의 연애를 끝내고 햇볕이 들지 않는 복층 원룸에 산다.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는 우연하고 가벼운 만남을 반복하지만 좀처럼 관계는 깊게 발전되지 않는다. 도시의 군중이 두려운 여자는 예전부터 간직해온 책 <월리를 찾아라>에서 군중 속에 숨은 월리를 찾을 수 없다.

아무데도 쓸모없는 건축적 잉여 공간이자 변덕, 균열, 임기응변 등 우리의 나쁜 속성을 보여주는 아름답지 않은 공간. 본래 영화의 원제는 ‘측벽’이었다. 외관, 정면, 실용적 실내에 주목하는 우리가 건물의 옆면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도시적 인연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메신저, 화상통화, 실시간 채팅, 소셜 데이팅 등 소위 ‘프로필’을 앞세운 수많은 네트워크상의 관계들이 존재하지만 좁은 원룸으로 홀로 돌아오면 고독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다. 조금 시선을 돌려 건물의 측면을 보면 누군가는 창을 뚫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군중 틈에서 숨은 그림 찾듯 간절히 희망한다면 시멘트 사이에서 나무가 자라듯 삭막한 도시에서도 따뜻한 인연을 만날 수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은 도시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영화다. 낡고 버려진 공간들이 품은 온기를 온전히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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