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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는 지하 3층에서 시작했다

말 잘한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만 사실 저는 발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2001년경 삼성역에 있던 ‘김미파이브’라는 곳에서 일주일에 두세번 시합을 했습니다. 그곳은 레스토랑 내에 링이 있는 아주 특이한 공간이었습니다. 금요일로 기억하는데 저는 상대 J선배를 코너쪽으로 집어던졌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면서 제 몸을 날렸습니다. 보디 스플래시. 체격적 우위를 가진 선수가 자신보다 작은 선수를 시쳇말로 ‘짜부’시키는 기술을 사용했죠. 그런데 갑자기 선배가 피하면서 저는 링 모서리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링 바깥에 있는 쇠기둥에 제 얼굴을 들이받고 다시 180도 뒤로 나자빠지고 나서야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습니다. 작용과 반작용.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 긴급후송된 상태. 앞니가 부러진 것이죠. 일단 다음날 바로 임플란트 시술을 했는데 얼마 뒤 경기를 하러 나갔다가 링에서 또 부러뜨려먹고 말았습니다. 저를 바라보던 의사선생님은 저를 다시 수술대 위에서 볼 일은 없어야겠다고 마음먹으셨던지 임플란트 치아를 아주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박아’주셨습니다. 이전에 했던 것이 티코라면 지금 제 상악에 박혀 있는 것은 지프 랜드로버 같은 느낌.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견고함에 치중하다보니 말을 할 때마다 혀 끝부분과 항상 닿거나 부딪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혀 짧은 소리가 난다는 것이죠. 수차례 궁리를 하다가 혀의 영점위치 즉 기준위치를 정중앙이 아니라 왼쪽 입천장으로 바꿨습니다. 즉 혀끝이 윗니와 입천장의 중앙지점을 터치하면서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왼쪽 입천장을 살짝살짝 치면서 발음하는 것이죠. 읽기 쉬운 아이들의 동화책부터 시작해서 신문기사와 고전까지 계속 큰소리를 내면서 연습하자 자연스럽게 들을 만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거의 이런 식이었습니다. 1999년 프로레슬링에 입문했을 때, 저는 회사원 출신으로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이들과 등급이 달랐습니다. 그들이 성골이라면 저는 망이, 망소이로 심지어 먹는 것도 달랐습니다. 방송일도 그랬습니다. 화장실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옷을 벗고 탈을 뒤집어쓰고 연예인 촬영분량이 다 끝날 때까지 야외에서 대여섯 시간을 떨며 기다리다가 몇 십분 촬영을 하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지상에서 시작한 적이 없고 모두 지하 3층에서 시작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 한번에 위로 올라갈 때 저는 항상 지하 3층에서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갔습니다. 프로레슬링은 일본 DDT 14대 챔피언, 방송일은 공중파 고발프로그램 진행자까지 해봤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이들에게 지하 3층은 공포의 영역입니다. 그곳으로 간다는 것은 하강이 아니라 추락입니다. 추락한 사람은 계단 앞에서 오들오들 떨며 감히 올라갈 생각도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바닥으로 내려오면 다시 올라가면 됩니다. 지하 3층부터. 다시. 노력은 결코 사람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가끔 사람이 노력을 배반할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