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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뷰티풀 마인드
2002-02-19

시사실/뷰티풀마인드

■ Story

프린스턴 수학과 대학원의 존 내시(러셀 크로)는 ‘수려하고 오만하고 괴짜인’ 천재로 유명하다. 자기 확신이 넘치고,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내시는 수업에는 들어가지도 않으면서 ‘오리지널 아이디어’에 집착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을 발견하겠다며 유리창에 비둘기의 행동 패턴이나 사람들의 이동을 수식으로 바꾼 복잡한 공식을 적어대며 시간을 보낸다. 아리따운 여인을 유혹하기 위한 친구들간의 게임을 지켜보던 내시는 마침내 ‘균형이론’의 단서를 찾아낸다. 균형이론을 발표한 논문이 인정을 받고, 내시는 석학들이 모이는 윌러연구소에 들어가게 된다. 암호 해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코드 브레이커’ 내시는 비밀요원인 윌리엄 피처(에드 해리스)의 제안으로 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내시의 수업을 듣던 물리학도 엘리샤(제니퍼 코넬리)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듯하지만, 행복과 성공의 나날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 Review 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의 삶은, 찰나의 비행기 추락처럼 극적이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모든 영광을 손에 넣은 듯했지만, 한순간에 어떤 잘못 없이도 모든 것이 날아가버린다면, 그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아니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져버린 결과라면. 정신분열증, 순수한 ‘정신’으로 진리를 꿰뚫어보던 존 내시의 이성은 순식간에 초등학생 수준으로 떨어져버린다. 허상이 보이고, 망상에 사로잡히고, 자신이 이룩해온 모든 것을 파괴시켜버린다. <뷰티풀 마인드>은 그 참혹한 고난의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뷰티풀 마인드>는 일반적인 전기영화와는 좀 다르다. 실존인물의 삶을 그리기는 하지만, 스토리와 플롯은 영화적 요구에 따라 수정되고 새로운 사건들이 추가되었다. <뷰티풀 마인드>는 존 내시의 인생이면서, 동시에 아니다. 그러나 존 내시 인생의 정수와 한없는 추락의 아스라함만은 분명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진위’에 상관없이 <뷰티풀 마인드>는 한없이 떨리는 여운을 안겨준다. 20대에 경제학의 방향을 바꾼 경이적인 이론을 발표하고, 무려 30여년간을 정신분열증으로 암흑 속에서 보낸 뒤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복권된 한 천재의 삶은 감동적이다. 다른 무엇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정신분열증이 조금씩 치유되어가던 존 내시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에, 그의 ‘정신병 이력’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만나러 온 것이다. 교수클럽에 들어가 차를 마시던 내시에게, 다른 교수들이 자신의 펜을 놓고 간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학자에게 펜을 주던 고귀한 전통을 지킨 것이다. 아마도 눈물은 그 순간에 흘려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유배되었던 자가 끝없는 가시밭길을 헤치며, 드디어 자신의 고향에 발을 디디는 바로 그 순간(영화에서는 이 정도로 묘사되지만 전기에서는 교수클럽에 들어가기 전 내시가 “내가 들어가도 될까요? 나는 교수가 아닌데요”라고 망설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바이불은 ‘이 위대한, 위대한 학자가 자기 자신을 교수클럽에서 식사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너무나도 부당한 사태’라고 생각했고 열렬한 대변자가 되었다).

<뷰티풀 마인드>의 촬영방식은 약간 색달랐다. 러셀 크로는 조금씩 분열하며 붕괴하는 존 내시의 내면과 정서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 감정이입과 집중력 유지를 위해서 시간순으로 찍어가는 촬영을 제안했다. 이미 <아폴로13>에서 부분적으로 3개의 시퀀스를 이어서 찍었던 경험이 있는 론 하워드는 러셀 크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3개월간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며 촬영했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뷰티풀 마인드>는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너무나도 단순하게 존 내시가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부터, 노벨상을 받는 순간까지 시간순으로 쭉 따라가기만 한다.

그 평이한 플롯이 미스터리 구성으로 약간의 탄력을 받고, 무엇보다 러셀 크로의 탁월한 연기 덕에 장면마다 불꽃이 튄다. 고집스러운 러셀 크로는 자기만의 존 내시를 창조하기 위해,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존 내시가 직접 프린스턴대학의 촬영현장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러셀 크로와 호흡을 맞추는 제니퍼 코넬리와 에드 해리스의 연기도 ‘거의’ 완벽하다.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는 천재를 질시와 찬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살리에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뷰티풀 마인드>는 천재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세계와의 관계에 서툴지만, 누구보다도 그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어린’ 천재. 그 모순이 그를 정신분열증으로 이끌었고, 또 스스로 치유했다. “내 사고방식의 주된 특징이었던 망상적 경향을 띤 생각을 지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냉소와 풍자를 따뜻한 마스크 속에 감춰버렸던 <그린치>가 증명해주듯, 론 하워드는 ‘인간주의’의 전도사다.

<뷰티풀 마인드> 역시 그렇다. 영화 속에서는 존 내시의 야비하고 속물적인 면이 아주 희미하게 내비치지만, 실제 내시의 삶은 이중적이었다. 이중적인 삶에서도 얼마든지 인생의 교훈이나 감동, 깨달음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론 하워드의 길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논쟁적인 요소는 일찌감치 들어낸다. 그리고 순수하게 그의 ‘정신’에만 집중한다. 그것도 일관되게 ‘아름다운 정신’에만. 그 점이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론 하워드는 할리우드식으로 재편한 존 내시의 삶을 통해서 가뿐하게 감동을 안겨준다. 그것이 <뷰티풀 마인드>의 미덕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존 내시의 실제 생애

영화보다 추했던 삶

<뷰티풀 마인드>는 실제 인물의 생애를 그리고 있지만, 모두 사실과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인 아키바 골드먼은, 실비아 네이사가 쓴 존 내시의 전기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스토리를 전개한다. 미스터리 구성을 가미하고, 실제의 사건들을 조금씩 바꾸거나 삭제하면서 일목요연하게 존 내시의 정신적 붕괴와 극복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영화 속에 담긴 존 내시의 삶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실제의 삶은 그 이상이었고 때로는 추악하기까지 하다.

존 내시는 윌러연구소에 가지 않았다.

내시가 국가기관의 임무를 수행했던 곳도 윌러연구소가 아니라 샌타모니카에 자리한 랜드 코퍼레이션이었다. 랜드 코퍼레이션은 미국의 최고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실전에 활용가능한 핵전쟁과 게임 이론을 연구하던 곳이다. 내시는 50년부터 54년까지 일했다. 영화에서는 존 내시가 MIT까지 이르는 과정이 비교적 순탄한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존 내시가 프린스턴에 간 이유는 하버드에서 받아주기 않았기 때문이고, MIT에 간 것도 프린스턴 수학과 교수 임용이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재능은 인정했지만, 성격 때문에 탈락된 것이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 메달을 받지 못한 것도 평생 상처로 남았다. 내시가 랜드 코퍼레이션에서 밀려난 이유는, 동성애 때문이었다. 영화에는 일체 등장하지 않지만, 내시는 잘 알려진 양성애자였다. 수학과의 동료나 후배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공공장소에서의 외설죄로 체포된 뒤 랜드에서 쫓겨난다. 당시에는 ‘동성애자는 기밀을 취급할 수 없다’란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 내시에게는 사생아가 있었다.

존 내시는 엘리샤를 만나기 전에 간호사인 앨리너와 사귀었고, 첫째아들인 존 데이비드 스티어가 태어났다. 그러나 속물적인 존 내시는 하층계급이며 문법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앨리너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상류계급 출신에, 머리도 좋았던 엘리샤는 존 내시가 원한 배우자감이었다. 그러나 정신분열증이 심각해지자 결국 엘리샤는 이혼신청을 냈고, 63년 이혼이 성립된다. 엘리샤와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아들 존 찰스 내시는 고등학교 시절 정신분열 증상을 보인다. 그뒤 아버지처럼 수학과에 들어가지만 계속해서 정신분열증에 시달린다. 존 내시의 정신분열증은 영화 속의 환상이나 피해망상만이 아니라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를 들고 외계의 불가사의한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세계 정부를 세우겠다며 유럽으로 가서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고, 음모가 진행중이며 자신이 도청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존 내시는 30여년간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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