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디스토피아로부터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삶, 수몰되다
김선우 일러스트레이션 김현주(일러스트레이션) 2013-12-03

전국이 새마을운동 시대 같다. 이 조그만 땅에 참 댐도 많다. 전국의 댐 건설 예정지들이 두루 어이없고 탈이 많지만 그중 영양댐은 최악 중 최악. 지난 6월 국토부가 그간의 영양댐 타당성 조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댐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서둘러 ‘사업절차 개선방안’을 내놓았건만 개선은 무슨! 댐 건설은 이미 기정사실화해놓고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 일방적인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중이다. ‘주민 의견 듣겠다’고 정부는 말하는데, 대체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 걸까.

원점 재검토를 밝힌 지 5개월이 지난 11월19일, 또 기막힌 소식을 들었다. 이번엔 집단 린치까지 가세한 형국.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전형적으로 소비되는 장면들이 현실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이 어이없음. 게다가 한술 더 떠 영양지역 경찰들은 이날도 댐 찬성쪽의 사설경호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단다. 이날의 장면들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산골마을 조그만 폐교에서 영양댐 찬성집회가 오전 11시에 예정되었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모이는 읍에서 하지 않고 외진 수몰예정지 폐교가 집회장소인 이유는 뭘까.) 경찰은 집회시작 3시간 전인 오전 8시경 미리 출동. 댐 반대 현수막을 걸고 있는 주민들에게 시비를 걸어 주민 2명을 강제 연행한다. 이들의 강제 연행을 제지하던 주민 2명도 마저 연행. 특수공무집행방해죄란다. 그 뒤 경찰은 댐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모두 한쪽으로 몰아붙이고, 댐 찬성 집회를 하기 위해 온 관광버스를 통과시킨다. 댐 찬성 궐기대회를 마친 뒤 낮 12시 반경 관광버스가 수몰예정지에서 빠져나간다. 경찰도 돌아간다. 약간의 눈발이 날리고 칼바람이 부는 날씨. 상황 종료된 듯한 오후 3시경. 아까의 관광버스 사람들이 댐 예정지 입구 국도변에 있는 댐 반대 현수막과 마을 안쪽에 걸린 현수막들을 찢으며 수몰지쪽으로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댐 반대 주민 몇명이 현장으로 급히 달려간다.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것은 댐 반대 활동 영상과 사진을 찍는 남자 2명과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 1명. 낫과 칼에 훼손되는 댐 반대 현수막들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에게 10여명이 달려들어 낭떠러지 개천가에 몰아넣고 집단린치를 한다. 벌건 대낮이었다. 카메라를 박살내 증거를 없애고, 휴대폰으로 이 장면을 찍으려던 다른 남자도 폭행한다. 소식을 들은 댐 반대 주민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이자 젖먹이를 안은 여자에게 “떠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폭언 협박한 뒤 관광버스를 타고 다시 나간다.

어이없음의 정점은 영양 경찰. 신고를 받고도 한참 뒤에 온 경찰은 현장의 목격자가 증언하는 데도 집단폭행했던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경찰은 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 댐 찬성 궐기대회에 참가한 관광버스의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 걸까. 공권력을 이용해 댐 반대 핵심주민들을 집중적으로 연행해가는 배후는 과연 누구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