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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애국심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이송희일(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김남희(일러스트레이션) 2014-01-21

해외 스타나 정치인이 내한하면 국내 언론들이 빼놓지 않는 질문들.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불고기와 김치는 먹어봤나요? 싸이와 K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전엔 김치와 불고기가 대세를 이뤘다면 요즘은 싸이와 말춤이 덧대지고, 몇몇 한국의 유명 영화감독들, 김연아와 박지성 같은 스포츠 스타들이 질문 리스트에 추가된 양상이다. 얼마 전 <설국열차> 홍보차 내한했던 틸다 스윈튼에게도 한국 ‘국적’을 가진 스탭들과 일하는 게 어떠냐는 폭풍 질문을 쏟아내다가 “예술에 있어 출신은 중요하지 않다. 국적 이야기는 그만 물어달라”는 돌직구를 맞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쯤되면 집착을 넘어 망상이다. 왜 이렇게 한국인들은 타국의 시선을 의식하는 걸까? 해외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선수가 어떤 활약이라도 한번 하면, 해외 반응이 어떤가 얼마나 클릭질을 해대는지 검색어 리스트에 ‘해외 반응’이 버젓이 올라오곤 한다. 이 정도로 집착이 심하다 보니 올림픽과 월드컵은 해외 반응을 위한 병적인 카니발이 된다. 올림픽 메달 집계 방식만 봐도 아찔하다. 원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는 공식적으로 나라별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설사 메달 순위를 매긴다고 해도, 대부분의 국제 언론사들이 메달 총합계 위주인 반면, 한국은 금메달로만 순위를 결정한다. 반짝거리는 금메달만이 국위를 선양하는 증표인 것처럼. 오죽했으면 어느 선수가 이렇게 말했단다. “전세계 모든 선수와 경쟁해서 은메달을 땄는데, 한국 사람들은 축하보다 위로를 한다.” 해외 반응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기괴한 풍경이다.

이 기괴한 집단적 무의식은 유사 파시즘 형태로 전이되기도 한다. 황우석 사태를 기억하는가. 국위 선양에 나선 황 박사님을 위해 그 지지자들이 진달래 뿌리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당시 황우석 논문 조작을 비판하던 사람들에게 붙여진 타이틀은 ‘매국노’였다. 또한 심형래 감독의 <디 워> 사태는 어땠는가. 덕분에 개인적으로 평생 다 들어도 부족할 정도로 매국노라는 소리를 들었다. 해외 반응만 좋다면, 국위만 선양한다면 비판적 이성의 눈을 감아도 좋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 파국의 징조다. 고야의 격언,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가 예견한 대목이다.

이 집착에 가까운 집단적 애국심도 물론 짠한 구석이 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채 살아온 소국의 신민들 입장에서 얼마나 타국의 인정이 목말랐겠는가.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면서 강한 국가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으면 김치 먹어봤느냐고, 말춤은 출 줄 아느냐고, 너희가 줄기세포에 대해 아느냐고 슈렉의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물어보겠는가.

하지만 ‘피해망상’에서 연원한 애국심은 당신을 강하게 하지 못한다. 이딴 애국심은 목마름의 저주를 받은 탄탈로스처럼 타국의 인정을 영원히 갈구하는 노예의식일 뿐이다. 진정한 강자는 무심히 즐기는 자들이다. 이제 피해망상을 벗어던질 때도 됐다.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정말 애국심을 갖고 싶다면, 이 사회가 건강해지도록 당신과 타인의 삶을 염려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일 거다. 삶은 디테일 속에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