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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눔의 계절
김선우 일러스트레이션 김현주(일러스트레이션) 2014-03-04

몇몇 글들이 마음을 찡하게 하는 요즘이다. 첫 번째는 뜻밖에도 법원 판결문이다. 지난 2월 초, 쌍용차 정리해고가 부당했음을 판결한 판사가 읽어 내려간 판결문엔 ‘인내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란다’는 대목이 있었다. 아, 법정에서 읽히는 판결문이 이렇게도 따뜻할 수 있구나. 이런 시간이 좀더 빨리 왔더라면! 고통 속에 억울하게 숨져간 스물네분의 영정이 떠올라 더욱 가슴 아팠다.

두 번째는 한 시민의 편지글이다. 해고 무효 판결이 내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는 손해배상금 47억원. 대다수 사람들에게 상상조차 어려운 이런 액수의 돈을 해고노동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하는 어이없는 현실의 바닥에는 무엇이 있나. 노동조합의 쟁의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그런데 정당한 권리 행사에 자본은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 압박 등으로 실력행사를 한다. 천박하고 저열한 반윤리적 물신의 횡포. 이 과정에서 노동자 가족과 노조는 끔찍한 고통 속에 유린된다. 이 고통이 너무나 가슴 아파서 한 시민이 4만7천원씩 10만명이 힘을 모아볼 수 없을까 하는 제안을 했다. 4만7천원과 함께 동봉한 가슴 뭉클한 편지글이 손해배상/가압류를 막기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의 마중물이 되었다.

그리고 가수 이효리가 ‘노란봉투 캠페인’에 동참하며 아름다운 호응을 일으키고 있다. 4만7천원과 함께 보낸 뭉클한 편지에서 이효리는 “한 아이엄마의 편지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아이의 학원비를 아껴 보낸 4만7천원, 해고노동자들이 선고받은 손해배상 47억원의 10만분의 1, 이렇게 10만명이 모이면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그 편지가 너무나 선하고 순수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 편지는 ‘너무나 큰 액수다’, 또는 ‘내 일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모른 척 등 돌리던 제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적은 돈이라 부끄럽지만, 한 아이엄마의 4만7천원이 제게 불씨가 되었듯, 제 4만7천원이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리길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선한 마음이 선한 마음을 깨워 서로서로 손잡고 함께 가는 꽃밭 같은 세상. 슬픔도 아픔도 많은 세상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여전히 희망의 증거들을 만들어가는 이런 흐름이야말로 생이 진짜로 생생해지는 순간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노란봉투’가 벌써 4억원을 넘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뒤면 1만명이니 10만명의 10분의 1이나 함께 왔다. 쌍용차 손해배상금 47억원에서 출발한 ‘노란봉투 캠페인’은 조금씩 더 공감력이 커져갈 것이다. 쌍용차, 한진중공업, 유성, 철도노조, 현대차비정규직, KEC 등 많은 사업장에 부과된 손해배상/가압류 금액이 현재 1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해고노동자 가족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손해배상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제도 개선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기울일 시민기구가 ‘손잡고’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또한 기쁘다. 이 칼럼의 원고료 중 4만7천원을 ‘노란봉투’로 보내야지. 생생해지게 얼른 손잡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