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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파이터는 죽지 않는다!

그거 있지 않습니까. 감이란 거. 이거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스마트폰의 LED가 번쩍입니다. 메일이 왔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합니다. 전기신호고 들고 나면서 점멸이 일어나는 것뿐인데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럴 때 메일을 열어보면 어김없습니다. ‘출전요청메일.’ 전화도 마찬가집니다. 연애를 경험해본 분들은 잘 아시잖아요? 지금 내가 걸고 있는 이 전화, 분명 받아야 할 타이밍인데 안 받습니다. 그리고 지금 걸려오는 전화, 뭔가 느낌이 이상합니다.

지난 토요일이었을 겁니다. 제 빨간색 소니 티포 스마트폰이 부르릉거리면서 전화가 왔음을 알려주는데, 책상 전체를 진동시키면서 떨리는 그 품새가 예사롭지가 않은 겁니다. 스피커를 귀에 대고 목소리를 들어보니 <씨네21> 담당기자였습니다. 그러며 마감엄수를 이야기하는데 통상적인 전화내용이기에 더욱 어색했습니다. 왜냐하면 마감을 넘기기 전에 이런 전화를 받은 것이 처음이었거든요. 이거 뭔가 ‘히든’이 있다, 라고 제 촉이 막 움직이려는 그 순간, 드디어 용건을 말씀하시더군요. “봄 개편이라서 이번이 마지막입니다”라고요. 아아, 그렇습니다. 3월은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이면서 저 같은 방송인, 글쟁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개편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방송은 현재 제가 진행하는 것이 없고 게스트로 나가는 것뿐이라 개편이고 뭐고 할 것도 없습니다만 <씨네21>은 다릅니다. 무엇보다 <씨네21>이라는 매체가, 그리고 글이 실리는 지면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아니, 섹시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요. 우선 국내 유일의 영화 매체라는 점.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저같은 영화팬 입장에서 아쉬운 일이지만 그런 귀중한 매체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저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면, 이거 정말 끝내주죠. 표지를 제외하고 가장 뒤페이지에 실리는 거 아닙니까. 잡지나 주간지나 가장 뒤페이지에는 에헴 하면서 분위기 좀 잡는 분들이 글을 쓰는 곳 아닙니까. 그런데 저의 글이 가장 뒤페이지에 실린다니요. 물론 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디스토피아로부터’에 글을 올리는 여러 명의 필자까지 순환되는 것입니다만, 어쨌든 저는 일종의 우회상장을 통해 국내 유일 영화 주간지의 가장 뒤페이지를 하이재킹할 수 있었던 겁니다.

다른 매체에도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만 유독 <씨네21>에 글을 보내면 페이스북으로 트위터로 많은 분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에버노트 씨네21 폴더를 보니 저의 첫 칼럼은 2012년 12월20일에 작성했던 것이더군요. 그로부터 1년3개월 동안 글을 썼으니까, 시간이 꽤 됐군요. 아마도 <씨네21> 필진 중 가장 거대했던(육체적으로) 필자는 이제 떠나갑니다. 종종 영화 관련 텍스트로 인사를 드릴 예정이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시고요. 그래도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은 서점에 가면 제가 쓴 책이 몇권 있으니 두권씩 사주시면 그 아쉬움이 좀 해갈이 될 겁니다. “링도 지면도 사각이다! 다른 지면에서 싸우는 모습,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프로레슬링 정의의 영웅 분위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