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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랑, 알지도 못하면서
이송희일(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김남희(일러스트레이션) 2014-04-22

요즘 정신이 사납다. 동성애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지 못하겠다. 눈이 아플까봐 손가락을 고이 접곤 한다.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이 극성을 초월해 거의 광기 수준. 연일 기독교 신문들과 보수 언론이 동성애에 쏟아붓는 저주의 기사들이 한강을 범람시키고도 남을 지경이다. 물론 이전 한국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목사님들께선 그동안 휴거와 재산 증식에 관심이 많았지 동성애에 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교회 영업 품목에 동성애는 해당되지 않았더랬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근본주의 기독교가 미국의 수입품이어서 그런지 패악질로 이름 높은 그 동네 목사들 따라 ‘동성애 반대’를 한국 보수 기독교의 영업 품목 1위에 올려놓았다. 국립국어원을 압박해 ‘사랑’이란 개념을 이성애로 한정짓는가 하면, 아이티 목사들과 함께 ‘지구촌동성애저지국제연대’를 창설했다. 자기 종교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동성애 반대를 끌어온다는 것 자체가 애절한 자기부정이다. ‘이웃 타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국제적 종교로 기껏 발돋움할 수 있었던 기독교가 이제 자기증명을 위해 ‘타자에 대한 부정’을 종용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독교가 안 팔린다는 이야기다. 매력적 수단과 설득의 힘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예수가 존재한다면, 결점 많은 타자들까지 끌어안으며 성장했던 기독교가 이제 사회적 타자들을 지옥불로 위협하며 파국의 카니발을 즐기고 있는 이 지독한 모순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생존을 위한 영업 전략치고는 치졸하다 못해 가련할 지경이다.

어쩌면 한국 목사들은 러시아의 푸틴이나 아프리카 독재국가를 선망할지도 모르겠다. 제국의 영광을 되찾고 서구와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동성애를 제물로 바친 푸틴의 러시아, 그리고 국가주의와 민족적 단일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독재자들이 미국의 목사들과 손잡고 동성애자를 마녀사냥하고 있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처럼 한국을 변모시켜야 그들의 철밥통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애잔하게도, 한국은 샌드위치 국가. 동성결혼 열풍에 사로잡힌 미국과 아시아에서 게이 커뮤니티가 가장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중국 사이에 끼여 있다. 국회에 모인 기독교 의원들이 아무리 조찬기도회를 열고 동성애를 지탄하더라도, 한국을 둘러싼 정치/문화적 지층은 먼 시야로 봤을 때 그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이미 충분히 세속화된 한국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소위 ‘핑크 시장’을 양보할 리도 없다.

사실은 그 탓에 한국의 보수 기독교 목사들이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푸닥거리를 하는 걸 거다. 동성애 관련 이슈만 터지면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 목청을 터뜨리는 이유일 거다. 참으로 처연하다. 사랑보다 증오를 앞세운 종교는 언젠간 궤멸하게 되어있다. 사람의 영혼에 뿌리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