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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지마 히데토시] <무명인>
윤혜지 사진 백종헌 2014-06-03

니시지마 히데토시

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진심”과 “인연”으로 움직이는 배우다. “김성수 감독으로부터 진심이 가득 담긴 러브레터를 받았어요. 국적보단 감독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성, 인연을 먼저 생각해 <무명인>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무명인>에 앞서서도 그는 이재한 감독의 <사요나라 이츠카>, 김태희와 공연한 <나와 스타의 99일>로 이미 여러 차례 한국의 스탭들과 교류한 바 있고, 아미르 나데리의 <컷>을 촬영할 땐 미국, 터키, 이란, 프랑스의 스탭들과도 함께 일했다. “합작영화를 할 땐 문화적 장벽 때문에 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며 얻는 성취감과 만족도가 훨씬 큽니다. 김성수 감독과는 동갑이라 체험적으로 통하는 구석이 있었어요. 스필버그 영화든 성룡의 영화든 우린 아마 같은 것들을 보며 자랐을 거예요. <무명인>도 서로 ‘그 느낌, 말 안 해도 알지?’ 하는 식으로 얘기를 나눠가며 만든 영화죠.”

배역을 고르는 데에 특별히 까다롭지 않은 편이지만 그에게도 <무명인>의 이시가미 타케토는 나름의 도전이었다. 이시가미는 죽은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계기로 한국인 기자의 도움을 받아 아귀가 맞지 않는 기억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간다. 일종의 생체 실험을 당해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태임에도 의문의 조직을 피해 도망까지 다녀야 한다. “최근엔 평범하면서도 상황을 극복해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주변을 헤쳐나가는 캐릭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시가미도 그 연장선에 있는 캐릭터죠.” 일촉즉발의 상황이 많아 지붕에 매달리고 도로에 뛰어들기 일쑤인 “힘든 캐릭터”지만 감독에게 “되도록 직접 해내고 싶다”라는 의지를 전하기까지 하며 대부분의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이러한 “진심”과 “인연”들이 이어져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까지 더하면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출연작은 대충 헤아려도 100편을 훌쩍 넘긴다. 평범한 공학도였던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후회하지 않을 길을 찾다가” 공부를 그만두고 TV드라마 <하구레 형사 순정파 V>(1992)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TV드라마 <아스나로 백서>(1993)에서 동성친구를 사랑하는 미청년 마쓰오카를 섬세하게 연기해 주목받았고 이후에도 거의 공백기 없이 TV드라마와 영화, 광고 등을 오가며 부드럽고 단정한 캐릭터들로 인지도를 쌓았다. TV드라마 <언페어>(2006)의 건조하고 과묵한 세자키 편집장, 여성 상사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스트로베리 나이트>(2010)의 부하 직원 키쿠타는 대중이 니시지마 히데토시에게 바라는 이미지의 선봉에 선 캐릭터였다.

다작은 니시지마 히데토시에 대한 엇갈린 평가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가 성실하고 심지가 곧은 배우임을 증명하는 한편,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는 그가 과연 ‘믿고 보는 배우’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시마 나기사의 강연을 듣고 배우의 꿈을 품게 됐다”라는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필모그래피엔 ‘멋진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틈틈이 구로사와 기요시의 <인간합격>(1998), 기타노 다케시의 <돌스>(2002) 등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들의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더욱이 20여년간 쉬지 않고 연기를 해온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여전히 매번 고민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늘 부족하다고 느껴 변함없이 공부한다. 더 철저한 역할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하는 품을 보고 있자면 영화를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을 의심하기란 힘들어진다.

“そぉですね.”(그렇네요) 한 가지 질문이 끝날 때마다 혹은 새로운 답변을 내놓을 때마다 그가 습관적으로 덧붙이는 말이다. 일단 상대의 의견에 공감을 한 뒤 조심스럽게 진짜 속내를 말하기 위한 준비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 그렇네요. 관객이라면 보면서 캐릭터의 선호도를 결정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함께 만든 스탭들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나로서는 그게 힘들어요. 가능하기만 하다면 모든 캐릭터를 계속 살아내고 싶습니다. 물론 <무명인>의 이시가미가 이후엔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하고요. (웃음)” 결국 그가 내놓은 답은 이리도 싱겁다. 어찌됐든 니시지마 히데토시에겐 누군가와 나누는 진심과 인연, 그저 “사람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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