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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와 배우의 힘 믿고 눈속임 없이 뚝심 있게

<극비수사>(가제) 곽경택 감독

제작 제이콘컴퍼니 / 감독 곽경택 / 출연 김윤석, 유해진, 장영남 / 배급 쇼박스 / 진행 촬영 중 / 개봉 미정

“밥부터 묵자.” 곽경택 감독은 신작 <극비수사>(가제) 8회차 촬영을 하다 말고 약속 장소인 대전의 한 식당으로 들어왔다. 촬영 없는 날이라고 해서 찾았는데 그새 일정이 바뀌었나보다. “비가 내린다고 해서 촬영을 취소했다가 아침에 비가 안 와서 재개했다.” 그는 <사랑>(2007), <통증>(2011), <미운 오리 새끼>(2012), <친구2>(2013) 등 최근 영화 모두 봄에 준비해 여름에 촬영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이번에도 여름 촬영이다. “매년 안 덥냐고? 지난해 <친구2>를 너무 더운 날씨에 찍었다. 이번에는 각오를 단단하게 해서 더위 때문에 힘든 건 아직 없다. 8월 중순 넘어가면 그때 각오해야지.”

<극비수사>는 1978년 실제로 일어났던 유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납치됐는데, 형사와 도사가 함께 수사에 뛰어들었던 사건이었다. 당시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재연될 정도로 수사 과정이 특이하고, 세상을 흉흉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그가 이 사건을 처음 접한 건 <친구2>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취재하면서 만난 은퇴한 형사로부터다. 형사가 들려준 여러 이야기 중 어떤 도사와 함께 유괴사건을 해결한 일화가 곽경택 감독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형사와 도사, 둘이서 범인을 잡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가 어딨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화라고 하니 재미있더라. 두 남자 캐릭터가 탄탄한 데다 엔딩 구조도 좋았다.” 단박에 이 사건에 꽂힌 곽 감독은 <친구2> 촬영 시작 일주일 전 프로듀서에게 양해를 구하고, 4박5일 동안 트리트먼트를 써내려갔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지금은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을 스크린으로 다시 불러들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항상 고민을 하잖나. 줄서기를 잘하고 영리하게 사는 게 맞는가, 아니면 내 일만 성실하게 하며 사는 게 맞는가. 형사와 도사 두 사람을 통해 그 딜레마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점에서 가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을 때 겁도 났다고 한다. “이야기가 드라마만 강했기 때문”이라는 게 곽경택 감독의 설명이다. “액션도 없고, 그렇다고 스릴러도 아니고. 그냥 휴먼 드라마다. 그래서 제목도 고민하고 있다. <아날로그 합동 작전>으로 할까, 아니면 <합동 작전>으로 할까.” 형사와 도사가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내용이니 ‘합동 작전’이라는 제목도 그럴듯하다. “<합동 작전>이 또 고민인 게 잘못하면 코미디로 보일 수 있다. 뭐, 코미디 요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야기에 묵직함을 더하는 건 김윤석, 유해진, 장영남 등 ‘연기 선수’로 채워진 출연진이다. 장동건(<친구>), 정우성(<똥개>), 주진모(<사랑>), 권상우(<통증>), 김우빈(<친구2>) 등 연기력보다 스타성을 앞세운 남자배우를 조련해왔던 감독의 전작에 비하면 꽤 흥미로운 조합이다. 일단 김윤석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부산경찰서 강력반 형사 공길용. 서슬 퍼런 1970년대, 권력에 눈치보고 출세라면 끔뻑 죽는 동료 형사들과 달리 범인 때려잡는 재미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던 열혈 형사다. 그렇다고 단순무식한 과는 아니다. 따뜻한 가슴과 명석한 수사 지능의 소유자라고 한다. “(김)윤석씨가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정한 뒤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감독님, 이 시나리오는 백숙 같습니다. 백숙은 고아서 양념 없이 소금만 살짝 찍어 먹어도 맛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아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공길용 형사와 콤비를 이룰 도사 김중산 역은 유해진이 맡았다. 평생 도를 닦았고, 도를 추구하는 즐거움에 빠진 남자다. “실제 만나본 도사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히말라야에 올라가 도를 닦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만큼 도 하나만 보고 살아오신 분이다. 되게 재미있으시기도 하다. 눈빛도, 심성도 맑으시고.” 곽경택 감독은 유해진으로부터 도사 김중산을 발견했다. 스크린에서 주로 보여준 코믹하고 쾌활한 모습이 아닌 실제 유해진의 진지한 성격을 말이다. “유해진씨의 본래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예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하던 그 모습 말이다. 그게 진짜 유해진씨의 성격”이라는 게 곽경택 감독의 얘기다.

출산하자마자 곧바로 합류한 초보 엄마 장영남에게 주어진 역할은 유괴당한 소녀의 고모다. 공길용, 김중산 못지않게 비중이 큰 역할이라고 한다. 실제 사건 때 유괴당한 아이의 엄마는 반쯤 실성하는 바람에 몸무게가 30kg대로 빠졌고, 딸을 제대로 찾으러 다니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백방으로 조카를 찾아다녔던 사람이 고모였다. <친구2> 때 “비장의 무기”라 부를 정도로 곽경택 감독은 장영남과 함께 작업하는 걸 즐겼다. “이런 역할, 저런 역할 써먹고 싶어서 신나는 배우 있잖아. 장영남이 딱 그런 배우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뗐지만 곽경택 감독은 이들로 구성된 출연진에 꽤 만족해하고 있다. “이번만큼은 캐스트에 자신 있다. 촬영할 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거저 먹어도 되나. (웃음) 연기에 손댈 필요가 없으니까 미술 같은 다른 파트에 눈을 돌리게 되더라.” 배우들의 연기에 흐뭇해하다가도 빈틈이 보이는 파트가 눈에 들어오면 불호령을 내리는 곽경택 감독의 현장이라니. 감독의 에너지 모두 배우 조련에 집중했던 전작을 떠올려보면 꽤 낯선 풍경이다.

영화의 비주얼은 곽경택 감독의 전작 <사랑>을 함께했던 기세훈 촬영감독과 <더 파이브>를 작업했던 전인환 미술감독이 책임진다. 제작진이 대전에서 촬영을 하는 것도 “아직 1970, 80년대 시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비수사>는 8월 말까지 대전을 비롯해 부산과 서울에서 촬영할 계획이다. 곽경택 감독의 12번째 장편영화.

<극비수사>(가제)는 어떤 영화

1978년 부산.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정체 불명의 남자에게 납치당한다. 남들보다 빨리 출세하는 데 혈안이 된 동료들과 달리 공길용은 그 시간에 범인 한명 더 잡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형사다. 그는 유괴사건을 수사하던 중 도사 김중산을 만난다. 두 사람은 유괴된 소녀를 찾기 위해 힘을 합친다.

영감은 여기서

“공길용과 김중산의 실존 모델인 두 선생님의 눈동자 주위의 근육. 사실 사람마다 눈동자는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눈동자 주위의 근육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출세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일을 소신 있게 밀어붙이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두 사람의 눈 주위 근육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공길용, 김중산 캐릭터와 이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힌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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