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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사생활 보호의 원칙
이송희일(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김남희(일러스트레이션) 2014-07-15

연예인은 공인이다? 이토록 어리석은 주장이 횡행하는 걸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기자 제현 여러분,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연예인이 세금으로 월급 받나? 공공기관 공무원인가? 아니면 선거를 통해 뽑힌 정치인인가?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공인이라면 <6시 내고향>에 나오는 시골 어르신들도 다 공인이겠다.

연예인들의 ‘유명세’는 상징적 자본이다. 그들은 상징적 자본을 이용해 돈을 버는 지극히 사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존재’와 ‘공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 주체’는 전혀 다른 존재 양식이다. 예컨대 국정감사장에서 “찍지 마, 시발”이라고 막말 파동을 일으켰던 유인촌 전 문화부 장관과 공항에서 사진 찍지 말라고 가운뎃 손가락을 쳐들었던 배우 김민준은 전혀 다른 존재론적 위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난 김민준이 왜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배우가 왜 장관급의 공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그 논리 구조가 기괴하다. “공적인 것”이란 테이블과 같은 것이다. 공화국 시민 공동의 삶을 윤곽짓고 결정짓기 위해 모인 테이블 말이다. 김민준이 사진 찍히기 싫어서 손가락을 쳐든 행위가 ‘공적인 것’인가? 그에 흥분한 나머지 공인 운운하며 사과를 요구한 기자들과 네티즌에게 묻건대 김민준의 가운뎃손가락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공적인 손가락인가? 파파라치들의 카메라를 부수고, 그들에게 손가락욕을 했던 수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아마 다시 손가락을 쳐들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렇듯 공과 사의 구분이 요지경 속이다. 공/사의 해체는 어쩔 수 없이 ‘공동적인 것’, 요컨대 ‘정치’를 실종시킨다. TV와 정치를 마구잡이 뒤섞는 스펙터클 정치란 이렇게 공/사의 구분을 무효화하고, 당연히 정치인들에게 물어야 할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연예인들에게 전가하는 해괴한 난리법석을 만들어낸다. 우리 삶을 결정짓는 자리에서 누가 더 부패한지를 놓고 경쟁하는 저 정치꾼들의 각축장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연예인의 손가락에만 매달려 공분하는 이상한 나라의 풍경. 달 보고 짖는 개가 따로 없다.

이게 다 서구에서 자본주의만 홀랑 받아들이고, 근대화는 덜된 탓이다. 개인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니 공/사의 구분이 오리무중이다. 사생활에 대한 존중도 없다.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의 염문이 도마에 올랐을 때, 극우정당 르펜 대표마저도 이렇게 말했다. “세금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은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예의? 공화국의 예의란 공과 사의 구분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아무리 모든 걸 상품화해서 전시하는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사적인 삶’에 대한 존중 없이는 공화국이 온전할 수가 없다. 그게 공화국의 기본이다. 덧붙여, 제주도 이효리 집 초인종 좀 그만 눌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