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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족>

단어에도 이미지가 있다면 ‘착한’ 단어일수록 오염되기 쉽다. ‘우리’와 ‘가족’이라는 단어도 이에 속한다. 공동체의 끈끈함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때론 그 이름 아래 착취를 정당화하거나, 명백히 존재하는 차별을 손쉽게 가리는 데 이용된다. 탈북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가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을 때도 그 속뜻은 의심받기 쉽다. 이 말은 그들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공고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또는 ‘장애우’라는 단어가 지닌 모순이 그렇듯, 그 단어 자체가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대상으로, 다른 누군가는 불편한 주체의 위치로 미리 위계 짓는 것은 아닌가. 이런 우려와는 달리 <우리가족>은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족 이야기다.

탈북 청소년이 한집에 모여 산다. 그들의 구심점이 되어준 이는 평범한 남한 노총각 김태훈씨다. 2005년부터 북한 이탈주민들의 보호시설 하나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태훈씨는 그곳에서 탈북 청소년 염하룡군을 만난다. “이제 가는 거야?” 당시 초등학생이던 하룡군의 물음에 태훈씨가 “아니, 집에 가서 물건만 챙겨 다시 올게”라고 자신도 모르게 약속한 것이 가족이 탄생한 최초 배경이다. 이후 아이들을 소개받으면서 식구가 불어나 2013년에는 막내, 주철광군까지 10명의 아이들이 가족이 된다. 이들은 대안가족이라 할 수 있는 그룹홈을 꾸려 ‘가족’이라 이름 붙였다. 명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체의 후원을 받지 않는 독립된 가족이다. <우리가족>은 ‘가족’의 9년여의 역사 중 2012년 5월부터 2013년 9월까지 15개월간을 담는다. 그동안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이 다큐멘터리에서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것은 감독의 게으름이나 조심스러움 때문이기보다는 그들의 과거를 끌어들이지 않고서라도 그들의 현재가 충분히 가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들이 밥을 먹고 빨래를 하는 일상의 노동을 세세하게 포착한다. 이후 둘러앉아 먹는 밥은 마치 노동에 대한 보상처럼 보인다. 이들의 에너지는 가족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라오스 아카마을에서 집을 짓는 봉사활동을 하고 미술과 음악 등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며 산다. 인터뷰에서 한 탈북 청소년은 말한다.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면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싫었다고. 이곳에는 ‘불쌍한 탈북 청소년’은 없다. 대신, 결혼을 매개로 이루어진 여느 가족보다 풍부한 ‘생산력’을 자랑하는 한 가족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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